[기자의 눈/이헌재]“새해엔 희소식만 배달했으면…”

  • 입력 2009년 1월 1일 00시 11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은 전국에서 우편물이 가장 많은 곳이다. 연말연시에는 우편물이 더욱 늘어 집배원 한 명이 돌리는 우편물은 하루 3000통을 넘는다.

서울강남우체국 우편물류1과의 박수정(51) 집배원은 1989년부터 21년째 이 지역을 담당해 오고 있다.

박 집배원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동안 참 많이 변했다. 단독주택이 밀집해 있던 이곳에는 아파트와 다세대·다가구 주택, 그리고 사무용 건물이 속속 들어섰다. 집배원의 운송 수단도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바뀌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많이 바뀐 것은 우편물의 종류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연말연시에는 편지나 연하장, 선물상자 등이 많았다.

지금은 그 자리를 각종 공과금 고지서나 신용카드 고지서, 업체의 홍보물 등이 대신 메우고 있다. 연하장에 붙은 우표 옆에 붙어있던 크리스마스실도 언젠가부터 눈에 거의 띄지 않는다.

한때는 박 집배원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가 내민 편지나 카드를 설레는 마음으로 뜯어보곤 했다. 하지만 요즘 등기우편을 전할 때면 “다 돈 내라는 것들이네요”라는 심드렁한 답변이 돌아오곤 한다.

박 집배원은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어려운 것 같다. 일을 나가야 하는 평일에도 등기우편을 집에서 받는 남자가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세상이 암울해 보이지만 희망적인 모습도 적지 않다.

박 집배원은 “가끔 기업체나 학교의 합격 통지서나 자격증 합격 고지서 같은 것을 전할 때가 있다. 기뻐하시는 분들을 보면 저도 제 일인 것처럼 기분이 좋아져서 하루 종일 힘들지가 않다”고 했다.

또 몇몇 사무실에는 세금계산서나 거래명세서 배달이 많다. 그만큼 사업이 잘된다는 뜻이다.

젊은 사람들의 밝은 표정도 큰 힘이 된다. 박 집배원은 “힘든 여건 속에서도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는 젊은 분들의 얼굴을 보면 밝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이분들을 볼 때마다 아직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말했다.

“새해에는 기쁘고 좋은 소식이 가득 담긴 우편물만 배달하고 싶다”는 게 20년 베테랑 박 집배원의 소망이다. 그의 소망이 모든 사람에게 꼭 이뤄지는 2009년이 되길….

이헌재 사회부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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