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는 지난해 3분기(7∼9월) ―0.5%의 성장률을 보인 데 이어 4분기(10∼12월)엔 이보다 훨씬 저조한 실적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기가 침체될 것인지보다는 침체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가 논의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정책당국도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경제를 조속히 살리기 위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마련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는 향후 2년간 7500억 달러를 경기부양에 투입할 방침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춘 데 이어 6000억 달러 규모의 모기지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한편 신용카드 및 학자금 대출 등에 2000억 달러를 지원함으로써 유동성 공급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 같은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올해 하반기부터 미국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물론 정부당국이 재정 지출을 과감하게 확대하고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정책으로 유동성 공급을 대폭 늘리면 경기가 회생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바로 시장 기능의 정상화다. 현재까지 나타난 상황을 보면 넘칠 정도의 유동성 지원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오히려 유동성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거래 상대방의 신용위험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은 여유자금이 생기더라도 이를 투자하지 않고 보유하거나 국채 같은 무위험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가계와 기업의 소비 및 투자가 위축되면서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더뎌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더구나 가계와 기업이 현금을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면서 자산을 축소한다면 경제 활동이 정상화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기업은 재무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고용 감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제는 실업률 상승이라는 무거운 짐까지 짊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경기부양정책이 경기 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정책당국은 부실채권 매입 등을 통해 시장의 신용위험을 전반적으로 낮춰주는 한편, 지원된 자금이 시장에서 활발히 돌아다니도록 막힌 부분을 터주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할 것이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