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활약이 기대되는 샛별 선수로 선정됐다”는 인사말을 건네자 “영광입니다”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다소 뚱한 표정이었다. 이 나이에 웬 샛별이냐는 듯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의 나이 이제 스물아홉.
금성을 가리키는 샛별은 ‘장래에 큰 발전을 이룰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20대 후반의 그를 샛별에 비유해도 틀린 건 아니지만 다소 어색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핸드볼 여자 대표팀 골키퍼 이민희(용인시청). 그는 휘경여고를 졸업한 이듬해인 1999년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빛이 보이고 길이 열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민희는 중학교 1학년 때 핸드볼을 시작했다. 그를 본 감독이 “골대 앞에 한 번 서봐라”고 하더니 “키 크고 팔다리가 기니까 골키퍼를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골키퍼는 그의 천직이 됐다.
이민희의 국가대표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주전 자리를 꿰찬 선배 오영란(벽산건설)과 이남수(2002년 은퇴)에게 밀려 10년간 백업 멤버로 지냈다. 승부가 기운 상황이나 주전 골키퍼가 다쳤을 때나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8월 베이징 올림픽 독일전 전반전에 오영란과 교체 투입돼 신들린 선방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로도 선발 출장은 계속 오영란의 몫이었다.
“2인자라고는 하지만 주전이 1명뿐인 골키퍼 자리는 2인자도 후보인 건 마찬가지예요.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싶었어요. ‘왜 핸드볼을 했을까’ 하고 후회하며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었죠.”
그런 이민희에게 기회가 왔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뒤 대표팀은 세대교체를 했다. 그는 10년 만에 주전 골키퍼가 됐다. 그리고 대표팀 주장까지 맡았다.
이민희는 지난해 11월 주전 골키퍼로 처음 출전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해 6연승으로 팀 우승을 이끌었다. 오영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잘나가던 고참들이 빠지니까 한국 여자 핸드볼도 별수 없구나 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뛰었다. 부담이 많았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고 말했다.
이민희는 아시아선수권 우승에 만족하지 않는다. 올해 서울컵국제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골키퍼 이민희’라는 이름을 제대로 알릴 각오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나는 선수들을 두 부류로 나누는 듯한 ‘후보’나 ‘주전’이라는 말 대신 선발 출전을 뜻하는 ‘스타팅’이라는 말을 쓴다”고 했다. 후보 생활 10년을 경험한 선수로서 동료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엿보였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