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형준]경찰조사 무시하는 ‘로텐더 전사들’

  • 입력 2009년 1월 7일 02시 59분


“공권력이 무너진 게 하루 이틀입니까. 국회에서 부수고 싸우는 등 난동을 피우며 법을 무시한 사람들이 경찰서에 왔다고 달라지겠습니까.”

6일 오전 10시 20분경 서울 영등포경찰서 수사과 사무실에서 수사관들이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국회 로텐더홀을 불법 점거하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보좌진과 당직자 19명이 퇴거불응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지만 이들은 경찰조사에 이틀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한 수사관이 사무실로 들어온 이들에게 “오늘도 묵비권을 행사하실 거죠?”라고 묻자 이들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들은 경찰서에 끌려온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였다. 한 명은 수사관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신문을 읽으면서 “이것 보라”며 옆에 나란히 앉은 동료와 잡담을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리를 꼬고 앉아 몸이 뻐근한 듯 팔을 앞뒤로 흔들고 어깨와 목을 움직이는 등 산만한 자세를 취했다.

수사관들이 질문을 던지며 조사를 시작했지만 이들은 피의 사실과 관련한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수사관들은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뿐 피의자 같지 않은 피의자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먼저 조사를 받은 사람들은 사무실 한쪽의 테이블에 모여 신문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여유를 부렸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묵비권은 수사기관에 의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이지 신문을 보고 잡담을 나누는 등 공권력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며 “의원 보좌관과 당직자들이 정치인의 힘을 믿고 법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수사관은 “오죽했으면 중학생까지 ‘싸우고 싶으면 폭력배나 되지’라고 국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국회 불법 점거농성과 난투극으로 ‘국회 폭력배’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공권력을 비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국회 로텐더홀 점거 투쟁’에서 끝까지 저항한 투사로서 ‘훈장’을 달게 됐다는 당당함일까,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곁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기 때문에 공권력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오만함일까.

국회의원들이 국회 시설을 태연하게 때려 부수고 이들을 보좌하는 사람들조차 공권력을 능멸하는 처사를 보면서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은 요원한 것처럼 보였다.

황형준 사회부 constant25@donga.com


▲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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