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들이 너도나도 1만 원이 안 되는 ‘값싼’ 선물세트를 내놓고 있다.
이마트는 9800원짜리 사과 선물세트를, 홈플러스는 9900원짜리 배 선물세트를 내놨다. 과거에도 불황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 같은 초저가 설 선물세트가 등장한 것은 참 오랜만이다. 지난해 설 이마트의 최저가 사과 선물세트는 2만8800원, 추석 땐 2만4800원이었다.
이마트는 1993년, 홈플러스는 1999년 설립 이래 단 한 번도 1만 원 미만의 과일 선물세트를 판 적이 없다.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라는 외환위기 때도 이마트가 판매한 과일 선물세트의 가격은 2만 원대였다.
대표적 설 선물세트인 굴비(20마리)의 최저가격도 4만9000원에서 3만980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만 원가량 떨어졌다. ‘고가 선물의 대명사’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지경이다.
이번 설 선물세트를 보면서 문득 2007년 5월 한국은행이 고액권인 10만 원권 발행을 발표했던 때가 떠오른다. 집값과 주가가 오르자 씀씀이도 커진 때문인지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10만 원 갖고 별로 살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중 가장 큰 명절인 설을 앞두고도 10만 원은 고사하고 1만 원짜리 한 장 허물기도 두려워진 시대가 된 것이다.
1만 원 미만의 설 선물세트를 보는 소비자들의 반응은 대략 두 부류일 것이다.
터무니없는 ‘가격 거품’이 빠졌다며 반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씁쓸한 마음으로 얇아진 지갑을 열 것이다.
새해부터 ‘불황’이란 말을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요즘 서민은 물론 중산층마저 지갑 열기를 무서워한다.
많은 사람이 지금 삶이 각박한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더 힘들다고 한다.
내년 설이 올해보다 낫다는 희망만 있다면 우리 국민은 몇천 원짜리 선물세트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신뢰성 있는 언행과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내년은 올해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일이다.
김선미 산업부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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