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온통 우울한 이야기뿐이다. 하지만 위기의 동의어는 기회라는 말이 더욱 절실히 마음에 닿는 시기가 아닌가 한다. 이미 우월했던 분야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비효율적이던 부분, 이제는 버려야 할 부분은 없는지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는 좋은 상황에서가 아니라 어렵고 답답한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 미국의 조달청장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공공 조달 분야의 세계 공통 화두로 떠오른 그린 조달, 전자 조달,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 확산에 따른 공공 시장 개방 가속화와 관련해 국제적 공조체제를 구성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공통의 과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탈리아 캐나다 영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와 다자간 공동 협력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귀국했다.
전자 조달은 국제 공조가 필요한 대표적인 분야다. 공공 분야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부패를 구조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시스템의 도입이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수단이라는 데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우크라이나 베트남 같은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을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는 공공 조달 시스템 운영을 주목적으로 하는 중앙 조달기관 설립이 한창이다.
한국은 강력한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기반으로 발달한 공공 분야의 디지털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다. 공공 조달 시스템뿐 아니라 관세나 국세 그리고 전자정부 시스템도 세계 각국이 벤치마킹하려고 잇따라 문의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동남아시아의 각 정부는 한국의 공공 부문에서 발달된 전자 시스템을 배우려고 공무원을 계속 보낸다.
공공 조달 시스템의 경우 지난해만 해도 24회에 걸쳐 외국 사절단이 교육과 워크숍에 참여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란의 국영 방송이 한국의 공공 조달 관련 내용을 방영했다. 올해 1월부터는 8개월간 한국의 공공 조달 시스템을 베트남에 전한다. 개도국 지원 자금을 이용하여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모두 지원하기로 했다. 베트남 조달청장은 한국 정부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왔다. 또 이달 중으로 코스타리카에 비슷한 시스템을 전하는 협정을 맺는다. 2010년에는 공공 조달의 올림픽 격인 국제 공공 조달회의가 한국에서 열린다.
다자간 모임의 구성, 공공 조달 시스템의 전파, 국제회의의 개최. 조달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머물렀던 과거의 틀을 벗어나 전자 조달을 앞세워서, 또 그린 조달을 모토로 세계로 뻗어 나가는 중이다. 이런 분야가 조달 업무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내에 안주하지 말고 집중력을 발휘하여 밖으로, 밖으로 나가면 새로운 세계가 우리를 기다린다.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이다.
장수만 조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