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을 비롯한 고위임원들은 카메라 앞에 총출동해서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최 회장은 자체 개혁안을 내놓으며 “농협 사태에 대한 준엄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주는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농협중앙회가 왜 하필 이 시점에 회견을 자청했는지 석연치 않은 점이 적지 않다.
농협중앙회가 자체 개혁안을 마련해도 법 개정은 이틀 뒤 발표될 정부 개혁안을 토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회장의 인사추천권 폐지를 비롯해 농협중앙회가 발표한 자체 개혁안의 내용은 사실상 지난해 말 정부가 발표한 업무계획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
이번 회견이 급조된 듯한 인상도 있었다.
회견이 끝난 뒤 농협중앙회의 한 임원은 “개혁안에 대한 일선 조합의 반대 의견이 생각보다 강하다”고 털어놨다. 시장경쟁에 따라 일선 조합이 통폐합되면 부실한 조합은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에 일부 일선 조합 직원노조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임원은 “조합에선 개혁안이 필요 이상으로 강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회 수뇌부와 현장의 분위기에는 괴리감이 크다는 전언인 셈이다.
수뇌부가 진정한 개혁 의지를 갖고 있는지에도 의문이 적지 않다.
최 회장은 “(이번 회견이 개혁에 대한) 자율성과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보도진이 조합의 합병 규모를 묻자 그는 “일선 조합장과 농민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라 구체적 수치를 밝히긴 힘들다”고 얼버무렸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번 회견은 최근 잇따른 물의로 농협에 쏟아지고 있는 국민의 비판 여론을 잠시 비켜가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윤요근 한국농촌지도자 중앙연합회 회장은 “농협의 자체 개혁안 발표는 여론에 대한 방패막이이지 농민을 위한 개혁안이 아니다”면서 “중앙회와 조합의 ‘밥그릇 싸움’과 자기욕심 챙기기를 그만두고 농민의 목소리 듣기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와 일선 조합은 이번만은 적당한 시늉내기 개혁, 마지못해 하는 개혁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조은아 산업부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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