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어제는 국회에서 멱살잡이, 오늘은 손잡고 해외로

  • 입력 2009년 1월 10일 03시 04분


여야 국회의원들이 1월 임시국회 기간에 대거 해외 출장에 나선다. 의원 외교와 의정(議政) 활동에 필요한 시찰 및 자료 수집을 위해서라고 한다. 법제사법위 기획재정위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의원들의 출장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꼭 필요한 출장이라면 가야 하겠지만 외유성 냄새가 풀풀 난다. 더욱이 의사당 폭력과 점거농성의 파문이 채 가라앉지도 않았다. 경제위기의 고통에 시달리는 국민은 안중에 없는 태도다.

의원들이 해머를 휘두르고 본회의장을 점거했을 때 국민은 차라리 직접 쇠망치를 들고 본회의장 문에다 대못질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해외여행 채비를 하는 의원들의 귀에는 국민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쟁점 법안 처리 문제를 놓고 멱살잡이까지 했던 여야 의원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손에 손을 잡고 외유에 나서겠다고 하니, 그때의 거친 말도 몸싸움도 모두 쇼였다는 말인가.

15일부터 21일까지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법사위 일부 의원은 로스쿨 시찰이 목적이다. 기획재정위의 한 팀은 터키와 이탈리아, 다른 한 팀은 미국 하와이로 날아가 국제 조세 및 재정정책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현지 전문가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교육과학기술위 의원들은 독일 프랑스 헝가리의 선진학교와 연구소를 방문할 예정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대표단은 15일부터 9박 10일 일정으로 미국과 중남미를 방문하기로 했다가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어제 전격 취소했다. 이를 보더라도 행선지와 방문 목적이 잘 부합하지 않는 다른 의원들의 출장도 취소한들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의원들이 20여 일간의 휴업 끝에 한 일이라곤 여야 간 견해차가 없는 56개 법안 등 58개 안건을 처리한 것이 고작이다. 9일부터 1월 임시국회를 새로 열었지만 12일 각 상임위와 법사위에서의 법안 심의, 13일 본회의에서 여야 간 쟁점이 없는 법안 50여 개를 처리하면 사실상 임무 끝이다. 그 외에는 아예 의사(議事) 일정이 잡혀 있지도 않다. 그럴 것이면 뭐 하러 굳이 1월 임시국회를 소집했으며, 회기를 31일까지로 늘려 잡았는가. 그러니까 병원 인허가 로비와 관련해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민주당 김재윤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용 국회’라는 의심이 나오는 것이다.

여야가 국회 정상화를 위해 만든 합의문 내용은 표현이 애매해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여야 원내대표단은 “하루빨리 국회를 정상화해 12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8일까지 민생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지만 외유 일정에 맞추려고 서둘러 적당히 합의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으로도 부족한가. 국민 세금으로 비행기 1등석 타고, 특급 호텔에 묵으며 대사관 직원들의 안내를 받다 보면 국회의원 하는 맛이 날지도 모르겠다. 정말 얼굴 두껍고 못 말릴 금배지들이다. 인터넷에선 “차라리 나가서 들어오지 말라”는 비난까지 나온다. 그래도 꼭 외유를 하겠다면 금배지를 떼고, 김재윤 의원을 검찰에 보내놓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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