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성장률 “1~2%” 56명 “1%미만” 20명 “마이너스” 3명
《‘일자리 창출, 금융시장 안정, 기업 구조조정의 성패에 올해 한국 경제의 운명이 달렸다.’ 본보가 ‘한국,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시리즈를 마치면서 경제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정부가 이들 3대 과제의 해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일자리 감소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지난해 금융시장을 사실상 마비시킨 신용경색이 재발하지 않도록 금융 및 기업 부문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불투명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같은 맥락에서 회생 가능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옥석(玉石)’을 서둘러 가리지 않으면 퇴출돼야 할 기업이 연명(延命)해 경제 전반의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자리창출 - 금융시장안정 - 기업구조조정 3대 과제로 꼽아
주택가격 “5∼10% 하락” 55명-“10%넘게 떨어질 것” 12명
한미FTA 비준 “한국이 먼저” 46명-“美움직임 본뒤” 41명
○ “재정 투입해 일자리 만들어야”
이번 설문에서 경제전문가들이 제시한 3대 과제는 올해 정부가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경제 정책인 동시에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한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본보가 2007년 말 경제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슷한 내용의 설문조사에서는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등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선진국 경제의 침체가 2008년 한국 경제를 위협할 3대 요인으로 지목됐다. 실제로 한국 경제는 지난해 이들 변수에 휘말려 1년 내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것에서 경제난 돌파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용 문제가 사회 불안요인이 될 경우 나중에 세계 경제 여건이 좋아져도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고용 관련 지표는 경기침체 탓에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7만8000개로 2003년 12월 이후 최저치였다. 비(非)경제활동인구는 지난해 8월 25만9000명에서 지난해 11월 35만6000명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정부의 재정 및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를 꼽은 전문가가 59명으로 가장 많았다. ‘비정규직법안 개정 등 노동유연성 확대’(20명)와 ‘기업의 고용유지 노력’(15명)이 뒤를 이었다.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정부의 선도적인 역할이 가장 중요하지만 노동계와 기업 모두 경제위기를 무사히 헤쳐 나가기 위해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저(低)성장 속 마이너스 성장 우려도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묻는 질문에는 56명이 ‘1% 이상∼2% 미만’이라고 답했다. 20명은 ‘1% 미만’으로 전망했으며 3명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장률 2%는 그나마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속하지만 이렇게 되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반면 ‘3% 이상’이 될 것으로 본 전문가는 1명뿐이었다. 특히 경제현장을 가장 잘 아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은 3명 중 1명꼴로 ‘0% 이상∼1% 미만’이라고 답해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보다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이 같은 비관적 전망은 최근 국내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는 데서도 읽을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은 기존 전망치 3.6%를 절반 수준인 1.8%로 내렸고 한국금융연구원은 3.4%의 기존 전망을 1.7%로 낮췄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12월 제시한 전망치 2.0%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 98명은 늦어도 내년 중에는 경제 회복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해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게 봤다.
○ “시중금리 낮춰 빚 부담 줄여줘야”
올해 주택가격이 어떻게 움직일지 묻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55명은 연말 전국 평균 집값이 연초보다 ‘5% 이상∼10% 미만 하락할 것’이라고 답했다. 12명은 ‘10% 이상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현재 수준이 유지될 것’이라는 응답은 21명에 그쳤다.
이는 자산가치가 급락해 가계의 빚 부담이 가중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가계 부채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47명이 ‘정부와 한국은행이 시중금리를 낮추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답했다. 빚이 많은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채무 재조정(프리워크아웃),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회복 프로그램 확대 등도 해법으로 제시됐다.
중소기업 자금난 해결 방안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33명은 ‘정부가 신용보증기금 등 보증기관의 자본을 확충해 보증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직접 은행의 자본을 확충해 대출 여력을 높여야 한다’(22명)는 의견과 ‘기업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여 은행이 대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21명)는 응답이 비슷하게 나왔다.
금융위원회, 지식경제부, 채권금융기관 등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기업 구조조정의 범위와 방식에 대해서는 ‘민간이 주도하되 부실기업으로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52명으로 가장 많았다. 외환위기 때와 지금은 기업과 금융권의 사정이 다른 만큼 정부가 주도하기보다는 개별 기업의 사정을 잘 아는 은행권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LG경제연구원은 최근 국내 상장기업 10곳 가운데 4곳이 부실하다는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부실 상장사 비중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말 57.7%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2007년 26.1%로 낮아졌으나 경기침체로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한국 국회가 먼저 비준에 동의해 미국 의회 등을 압박해야 한다’(46명)는 의견이 ‘미국 차기 행정부의 정책기조, 미 의회의 움직임을 지켜본 뒤 한국 국회가 비준에 동의해야 한다’(41명)는 의견보다 다소 많았다.
특히 경제연구소 대표 10명 중 7명, 대학교수 15명 중 9명은 ‘한국이 먼저 비준에 동의해야 한다’고 답해 다른 그룹보다 선제적 비준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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