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경제 살리는 정치, 죽이는 정치

  • 입력 2009년 1월 19일 20시 04분


경제학은 19세기 중반까지 정치경제학으로 불렸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에서 국제무역의 이론적 기초인 비교우위론을 소개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정치경제학 원리’를, 카를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내놓았다. 우리가 쓰는 경제라는 말도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사회적 변수는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끼리’에 집착해 문을 걸어 잠근 북한 미얀마 이집트와, 경제발전의 모티브를 해외에서 찾은 한국 싱가포르 대만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정치지도자들이 선택한 정책 방향의 차이였다. ‘마오쩌둥의 중국’과 ‘덩샤오핑의 중국’은 같은 나라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투자는 미래의 과실(果實)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희생하는 행동이다. 폭력과 불법이 난무하거나 방종을 자유로, 거짓선동을 민주주의로 착각하는 곳에서는 이뤄지기 어렵다. 정치적 안정과 법치주의의 확립, 재산권의 보호는 지속적 경제발전을 위한 빼놓을 수 없는 전제조건이다. 돈은 겁이 많다.

미신에 가까운 억지 주장이 불러온 지난해 광우병 불법 시위는 우리 국가브랜드와 경제신인도를 추락시켰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폭도들의 모습이 전 세계에 방영되면서 일부 기업인이 한국 방문을 미루고 있다”며 “정치적 불안정이 한국에 대한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고 보도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과격 폭력시위와 파업은 해외에서 한국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뿐”이라고 했다. ‘미친 소’로 몰렸던 미국 쇠고기 수입이 급증했지만 광우병 소동을 부추긴 세력이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거나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많은 기업이 아직도 올해 경영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밀려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자영업자들은 손님 구경하기가 어렵다며 울상이다. 취업문이 더 좁아진 젊은이와 부모들의 한숨은 커져만 간다.

경제 환경이야 전 세계가 다 나쁜 것이니 그렇다 치자. 우리는 경제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정치적 환경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폭탄까지 안고 있다. 과반수의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은 ‘웰빙 기질’과 계파 간 갈등으로 소수 야당의 동의 없이는 법안 하나도 처리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다. 갈수록 386운동권 논리에 휘둘리고 급기야 국회 폭력까지 치달은 야당은 민생이나 경제는 아예 내팽개친 모습이다. 김대업, 탄핵, BBK, 광우병 사건 등 잇따른 왜곡·선동 시리즈에 관여한 정치권 외곽의 일부 세력은 ‘팩트’와 진실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개인이나 기업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도 국운(國運)이 있는 것 같다. 이 길로 가면 발전하고 저 길로 가면 쇠퇴할 것이 명백한데도 추락의 길을 선택한 사례는 많다. 한국경제가 재도약하느냐, 주저앉느냐는 1차적으로 정부와 기업의 대처방식에 달렸지만 그것 못지않게 정치권의 책무가 크다. 10여 년 전 먹장구름이 몰려오는데도 정권 말기의 무기력과 대선 후보들의 분열로 지리멸렬했던 여당과, 노동 및 금융개혁법이나 기아자동차 부실처리에서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은 야당이 함께 경제를 더 파국으로 몰고 간 외환위기 전야(前夜)가 심심찮게 떠오르는 요즘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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