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공병호]이름을 걸어야 책임을 진다

  • 입력 2009년 1월 20일 02시 58분


‘가장(假裝)만 하고 있으면 무엇이든 허용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흥망성쇠를 다룬 작품에서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 씨는 18세기 무렵 베네치아의 사육제라는 축제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1년 중 6개월이나 계속된 축제 기간에 가면으로 자신의 신분과 성별 그리고 연령을 숨길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무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자신을 드러낸 상태에서 좀처럼 할 수 없었던 음습한 행동이 축제 기간 아무렇게나 행해지는 모습을 두고 시오노 씨는 “자기가 누구인가를 감추는 그 한 가지만으로 인생은 엄청 수월해지고 다양해지는 것이다”라고 평한다.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익명성은 이처럼 매력적이다. 자신을 숨길 수 있다면 사람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이름 때문에, 지위 때문에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구속이나 규율이 없어진 상태에서 자유는 방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주장이나 댓글을 두고 혹자는 표현의 자유라는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규율이나 규제는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런 자유가 가상공간을 넘어서 여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이런 여론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의 이용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익명성의 허용 여부에 대해 옳고 그른 문제를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촛불, 광우병 파동, 유명 탤런트의 죽음, 미네르바 사건은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익명성의 허용 여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익명은 무슨짓이든 할 수 있어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경험하는 일은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사이의 충돌이다. 핸들을 잡고 자동차를 모는 것은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이 때문에 사람은 자동차에 선팅(윈도 틴팅)을 짙게 하여 사적인 공간을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고 싶어 한다.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이 자가용을 내려다보는 순간 당혹감을 느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동차 내부를 사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는 도로라는 공적인 공간 위를 달리게 된다. 이에 따라 운전자는 공적인 공간이 요구하는 규칙을 충실히 따라야 할 의무를 갖는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이 충돌하는 것은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웹에 글을 올리는 일은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이번에 사회적인 파문을 몰고 온 사람 역시 “물의를 일으킬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처럼 자신이 사는 집이란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 글쓰기는 웹에 오르는 순간부터 공적인 공간으로 이동해 버리게 된다. 글이 어떤 의도로 쓰였건 간에 그 글은 많은 사람에 의해서 오르내리고 악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특히 의도를 갖고 만들어 낸 잘못된 정보의 위험은 더욱 크다. 따라서 우리가 인터넷이란 공적인 공간에 대해 적절한 규율을 만들어 내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규칙의 제정을 필요로 한다. 마치 지구온난화의 위협이 증대하면서 이전까지 무한대의 자유가 허용되어 온 이산화탄소의 배출에 새로운 규제가 가해지는 일과 같다. 그래도 자동차는 함부로 운전을 할 경우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그에 대응하는 적절한 제어장치가 갖추어져 있다. 인터넷상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내용의 글이든지 자신은 피해를 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익명성이 보장되는 환경에서는 누구든지 유언비어나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를 향한 악의적인 정보를 얼마든지 인터넷상에 유통시킬 수 있다.

인터넷 실명화 -사이버 모욕죄를

익명성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글을 올리는 사람의 양심과 양식에 의존하기는 어렵다. 인터넷의 글쓰기에 대해서 이런 특성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지금처럼 무한 자유가 허용되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의 이해를 위함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계속해서 가해지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사회적 비용을 줄여나가기 위함이다.

표현의 자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인정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규율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이 정도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였다면 이제는 인터넷의 전면 실명화와 사이버모욕죄의 실현을 향하여 좀 더 적극적인 제도 개선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쓸 때에만 책임 있는 행동을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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