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카디 할머니는 흙더미에 묻힌 시신 한 구가 손자임을 확인한 뒤 건물 잔해 위에 주저앉았다. 옆에서 시신 발굴 작업을 돕던 한 남성은 “이렇게 끔찍할 수가!”라며 탄식했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휴전 선언으로 22일간에 걸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간 전쟁이 일단락됐지만 결과는 처참하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 피해가 심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1300명 사망자 중 16세 미만 어린이 청소년 희생자는 무려 410명이나 된다. 여성과 노약자는 총 514명이 사망했고, 부상자 5300명 중에도 여성과 어린이가 2650명에 이른다. 병원에서 이들을 돌보다 폭격으로 숨진 의료진만 해도 14명이다.
겨우 살아남았다 해도 남은 삶이 축복은 아니다. 한겨울에 가스와 전기, 수도, 식량 공급이 모두 끊긴 잿더미와 암흑, 추위가 지배하는 가자지구는 “생지옥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유엔 구호팀의 전언이다. 탄식과 절규 속에 분노, 불신도 팽배한 분위기다. 어린이들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시달리고 있다.
재산 피해도 엄청나다. 팔레스타인 인권단체에 따르면 현재까지 피해를 본 주택만 1만6000채, 무너진 건물은 4000채로 집계됐다. 사원 20곳, 공공건물 51곳, 학교 60곳, 병원 16곳이 파괴됐다. 사회간접자본시설 피해만 16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본격적인 복구 작업이 시작되면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망했다.
이스라엘은 과연 원하는 것을 얻었을까. 하마스는 불안한 한시적 휴전 속에서도 결사 항전을 다짐하며 벌써부터 로켓 공격을 재개할 태세다. 피는 피를,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는다는 추악한 진리가 되풀이될까 우려되는 부분이다.
아브라함 부르그 전 이스라엘 국회의원은 최근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 칼럼에서 “언젠가 가자지구가 알 카에다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근거지가 됐을 때 우리는 그 중심에서 하마스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그렇게까지 무시무시한 존재는 아니었던 하마스를 결국 전쟁이 더 위협적인 테러리스트로 키울 것이라는 그의 경고가 섬뜩하다.
이정은 국제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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