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디지털단지에 위치한 케이엘피코리아(www.showroom.co.kr)는 자사가 디자인한 기념 손목시계가 지난해 11월 미국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의 최종승인을 받아 10여 차례 수정과 검토를 거쳐 최근 미국으로 납품했다고 20일 공개했다. 시계의 납품단가와 수량은 미국 측의 요청으로 비밀에 붙여졌다.
미국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의 승인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취임식 공식 시계'라는 타이틀은 부여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을 의뢰하고 비용을 댄 쪽도 오바마의 후원단체인 '오하이오 변호사 협회'라는 것.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에 맞춰 대통령의 사인과 휘장이 들어간 유일한 시계라는 점에서 미국 정가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엘피코리아 김관택(52) 대표는 "디자인 상담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미국인의 취향과 체형에 맞는 차별화된 디자인이 계약체결에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 업체가 미국 행정부와 오랜 기간 신뢰관계를 구축해 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이 회사는 이미 10년째 5차례에 걸쳐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등 미국의 주요 정치인들에게 시계를 공급해 왔다.
케이엘피코리아와 미국 행정부의 첫 거래는 1999년 '클린턴 대통령의 사인이 담긴 시계 제작이 가능한지'를 물어온 미국 대사관 측의 갑작스런 의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클린턴 시계' 제작 후 입소문이 퍼져 미국 민주당 정치인은 물론이고 부시 대통령 시절의 백악관까지도 한국의 조그만 시계업체에 대통령 사인이 들어간 기념시계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업체는 클린턴-부시-오바마까지 3대에 걸친 미 대통령들의 기념 시계를 제작한 셈이 됐다.
오바마 시계에 사용된 무브먼트(손목시계의 움직임을 맡은 핵심부품)는 일반적인 기념품에 사용되는 저가의 중국산이 아닌 일제 시티즌 제품이 사용됐고 악어무늬 소가죽밴드나 휘장이 인쇄된 철판 및 포장에는 모두 한국산을 사용했다고 케이엘피코리아측은 밝혔다. 그러나 미국 측의 요청으로 시계 뒷면에 새겨지는 'Made in Korea'라는 표현은 삭제됐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사용된 제품과 비교해 달라는 요청에 김 대표는 "기념시계로는 최고 수준"이라며 "한국에서 사용되는 기념품 시계보다 가격대가 높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 대통령 시계에는 원산지 표시가 없기 때문에 첫 수출에 나설 때는 원산지 입증 문제로 통관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그때마다 미국 대사관이 나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 그러나 이제는 수출이력이 쌓이고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의 공문을 통관에 제시하는 등의 노하우가 생겼다고 했다.
김 대표는 "요즘 같은 불황기에 한국에서 디자인된 시계가 미국에서 중요하게 쓰이게 되어 기쁘다"며 "한국 시계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지만 정책적인 뒷받침만 있으면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