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콜롬보’로 불리는 박 반장 역의 최불암과 김상순, 남성훈, 조경환, 노경주 등 5명의 수사관들이 범죄사건을 해결하는 활약상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당시 수사반장은 최고의 인기 드라마였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19년간 880회나 방송됐다. 1984년 10월 ‘선정성’을 이유로 잠시 중단됐다가 이듬해 부활됐다. 당시 5공 정권이 “범죄 없는 세상인데 왜 이런 드라마가 필요하나”라고 제동을 걸어 도중하차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CSI’ ‘성범죄특수수사대’ ‘본즈’ ‘콜드 케이스’ 등 최첨단 과학수사기법으로 구성된 ‘미드’에 빠진 요즘 신세대들이 지금 보면 ‘고전’에 속하는 아날로그 드라마로 여기겠지만, 그래도 그때는 단연 최고였다. 드라마의 실제 모델이 최중락 서울시경 형사과장이란 소재도 흥미를 더했다.
‘솔직히 말해 머리 굴리지 말고 말해/꼬리가 길면 밟혀 걸려 걸려 허/어딜 갔다 왔기에 입술이 오늘따라 빨갛네….’
추궁 대상이 범인이 아니라 ‘여친’일 뿐 DJ Doc가 ‘수사반장’이란 타이틀로 랩곡까지 낸 것을 보면 세월은 흘러도 수사반장의 인기는 이어지는 것 같다.
송강호가 시골 형사로 열연한 ‘살인의 추억’은 1986∼1991년 경기 화성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이 소재다. 살인사건 10건 가운데 1990년 사건만 범인이 붙잡혔을 뿐 나머지는 증거를 남기지 않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2004년 공소시효가 끝나 미제 사건이 됐다. 연인원 180만 명을 동원해 샅샅이 뒤지고 용의자 3000여 명을 조사한 대형 사건을 영화화한 만큼 52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20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유영철을 모티브로 한 영화 ‘추격자’는 수사진과 범인의 쫓고 쫓기는 긴박감 못지않게 잔인한 범행수법, 범인역 하정우의 소름 끼치는 ‘살인 미소’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차라리 영화였으면 좋으련만 올 설 연휴에도 안타까운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했다. 경기 군포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해사건의 피의자가 경찰의 치밀한 수사 덕분에 극적으로 붙잡혔다. 하지만 착실하게 학점을 이수하며 대학편입 꿈에 부풀어 있던 21세의 여성은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 치밀하고 잔인한 범행수법이 놀랍고, 추가 범행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혹 수사 과정에서 군포 안산 수원 화성 등 2006년 이후 경기 서남부에서 발생한 연쇄실종사건이 풀릴지 관심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또 다른 ‘유영철’이 우리 주변을 배회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해진다. 아마도 희생자들은 억울함을 풀어줄 새로운 수사반장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미제 사건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살인의 추억’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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