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영]한나라, 분열 아닌 분화 필요하다

  • 입력 2009년 2월 4일 03시 01분


한국은 미증유(未曾有)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경제적 위기가 사회적 위기로 전이되어 사회 전체가 해체 위기에 빠지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 정부 통계에 잡힌 공식 실업자는 75만 명 정도이다. 실제 실업자는 300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런 수치는 고등학교와 대학 졸업자가 쏟아져 나오는 2월 말이면 더 올라갈 것이다. 우리는 지금 15∼64세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여덟 명 중 한 명이 백수(白手)인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맞고 있다.

따라서 2009년의 핵심 의제는 단연 사회통합이다. 이를 위해 이명박 정부의 분발과 한나라당의 단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집권세력 내부의 단결 없이는 사회통합의 달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2일 회동은 여러 모로 주목받았다. 두 사람은 웃고 악수하고 노래하고 환담을 나누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현장에서 ‘쟁점법안에 대한 국민공감대 형성이 좀 더 필요하다’는 박 전 대표의 소신발언이 있었고, 다음 날에는 친박계의 핵심 인물로부터 ‘비주류 선언’도 나왔다. 한나라당 내부의 단결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이런 갈등의 책임소재를 가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두 가지 점에서 해결방안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데, 첫째는 단순히 당내 단결만 주장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정부 여당에 단결이 절실하다. 2월 국회에서 쟁점법안을 통과시키고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치러야 한다.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이 답보 내지 하락세를 그리는 상황에서 4월 재·보궐선거를 어떻게 치러야 할지도 막막하다. 이런 딜레마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도 박 전 대표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좀 더 길게 바라보면 당내 단결보다 분화(分化)가 더 약이 될 수 있다. 질문을 던져보자. 보수가 발전하려면, 그래서 4년 후 재집권에 성공하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단결인가, 분화인가, 분열인가? 분열은 분명 아니다. 분열하여 소모적인 자중지란을 벌일 경우 당과 보수 세력은 공멸하고 만다. 단결은 좋지만 그에 안주할 경우 당과 보수 세력을 정체시키고 침체로 이끌 수 있다.

가장 좋은 대안은 당과 보수 세력이 건설적으로 분화하여 내부에서 생산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전제는 있다. 권력만 놓고 다투지 말고 정책을 두고 경쟁하되 내적 분화가 외적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보수의 고질적 취약분야인 복지 통일 환경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당내 정책대결이 좀 더 활발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럴 경우 당은 유연성과 포괄성이 증대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통적 취약계층인 30, 40대와 지식층에 대한 포섭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무조건 단결만을 강조하지 말고 박근혜계의 움직임을 분열이 아닌 생산적인 분화로 유도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둘째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의 갈등은 개인적 차원보다는 새로운 당청 관계를 제도화하는 데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주지하듯이 노무현 정부가 실험했던 당청 분리 모델은 무책임성에 빠져 실패로 증명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당권 대권 분리 방안을 마련한 바 있지만 이 역시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아직도 한국형 당청 관계 모델을 정립하지 못했고, 그 점이 정치적 불안정성과 비효율성의 근원이다. 생산적으로 분화된 당과 청와대가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좋은지에 관한 답을 하루빨리 찾지 못하면 한국 정치의 표류는 정권 차원을 넘어 계속될 것이다.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