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인생은 연극이 되고, 연극은 인생이 되다

  • 입력 2009년 2월 5일 02시 45분


‘연극과 인생’의 기묘한 엇박자 담은 연극 2편 ‘햄릿…’ ‘하녀들’

《연극은 거짓이란 미끼로 진실을 낚는 낚시일까 아니면 인생이 곧 연기인 사람들의 진심을 잡아채는 덫일까. 지난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선 이처럼 엇갈리는 연극과 인생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작품 둘이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1월 29∼31일 문화공간 이다에서 3일간 짧은 공연을 한 ‘햄릿-슬픈 광대의 이야기’(김동연 연출)와 1월 30일 게릴라소극장에서 개막한 ‘하녀들’(이윤택 연출)이다. 젊은 연출가의 재기와 관록의 연출가의 뚝심을 보여준 두 작품은 공교롭게도 연극과 인생이 어떻게 맞물리고, 어떻게 서로를 배신하는지를 극명히 보여줬다.》

● 햄릿-슬픈 광대의 이야기

자신이 연기한 인생을 실제 삶으로 산다면…

● 하녀들

연극 내용을 실행에 옮기려다 실패하는데…

극단 시인과 무사의 ‘햄릿-슬픈 광대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해골로 잠깐 등장하는 어릿광대 요릭(최요한)을 경첩으로 삼아 기존 어른 햄릿(오용)의 이야기에 어린 햄릿(최설화)의 이야기를 중첩시켰다.

원작에서 햄릿은 아버지의 망령에게서 들은 끔찍한 말이 맞는지 확인하려 ‘곤자고의 암살’이란 연극을 각색해 무대에 올린다. 조카가 삼촌을 독살하고 왕위와 부인까지 차지한다는 내용의 이 연극을 본 삼촌 클로디어스 왕은 기겁한다. 형을 남몰래 독살하고 형수를 부인으로 취한 자신의 만행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햄릿을 이를 지켜보고 삼촌의 죄를 확신한다.

‘환상동화’로 이름을 알린 김동연 씨는 햄릿이 어린 시절 요릭에게서 연극을 배우며 ‘곤자고의 암살’의 주연배우를 연기했다는 상상을 펼친다. 따라서 어른 햄릿은 곧 어린 햄릿이 연기한 비극을 실제 삶으로 구현해가는 셈이 된다. “심지어 진실을 허위라고 의심해도 나의 사랑만은 의심 마오”나 “한순간에 천 리를 달리는 상상력보다 더, 사랑의 욕망보다 더 빨리 복수하러 날아가겠다” 같은 명대사가 햄릿의 어린시절 연극대사가 된다.

자신이 연기한 인생을 실제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난 멋진 비극배우가 될 거야”라던 어린 햄릿이 공연을 마친 뒤 요릭의 등에 업혀 “난 유쾌한 희극만 할 거야”라고 울먹이는 마지막 장면이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다.

연희단거리패가 7년 만에 무대에 올린 장 주네 원작의 ‘하녀들’은 삶이 곧 연기이고 연극이 곡 진실임을 보여줌으로써 연극의 마력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고압적인 마담(김소희)을 모시고 사는 솔랑주(황혜림)와 클레르(배보람) 2명의 하녀는 마담이 집을 비운 동안 마담을 모살하는 연극을 통해 해방감을 느낀다. 하지만 마담이 나타나면 그들은 온갖 치욕을 감내하며 굽실거린다.

그들에게 현실은 연극이고 연극이 진실이다. 분열증세에 괴로워하던 그들은 결국 연극의 내용을 실행에 옮기려다 미수에 그치고 만다. 솔랑주는 클레르를 격렬히 비난하고 연극에서 마담 역을 맡은 클레르는 연극의 완성을 위해 연극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밑바닥 인생을 경험한 극작가 장 주네는 현실(인생)과 연극(예술)의 합치가 오히려 인간의 삶을 통째로 삼켜버리는 심연이 될 수 있음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연출자 이윤택 씨는 그보다는 삶의 일탈과 해방의 출구로서 연극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그 심연 앞에서 증오와 독기를 내뿜는 세 여배우의 힘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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