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이 넘는 인구에 끈질긴 가난, 뒤늦게 경제성장률 세계 1, 2위를 다투게 된 중국과 인도는 늘 국제적 비교의 대상이 돼 왔다.
유능한 독재 중국 對민주국가 인도
최근의 관심사는 두 나라가 불굴의 성장엔진으로 글로벌 경제위기의 구원투수가 돼줄 것인지로 모아진다. 중국은 여전히 8%대의 성장을 자신하고 있고, 인도는 엄격한 금융규제와 정부개입이 오히려 금융위기의 방어벽으로 작용했다는 게 국제사회의 평가다.
공산독재를 하지만 정부는 유능한 중국, 민주주의이지만 표심에 신경 쓰느라 정부가 유능해지기 힘든 인도 중 어디에 미래가 있을지 나는 궁금했다.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가 그리워서가 아니다. 돈벌기 좋게 만드는 규제개혁, 글로벌인재를 키우는 교육개혁, 국기(國基)를 바로잡는 법질서개혁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데도 ‘민주를 부르짖는 세력’에 발목 잡힌 현실이 나는 암담했다.
아이야르는 최근 저서 '연기와 거울(Smoke and Mirrors. '진실의 은폐'라는 뜻)'에서 ‘카스트가 높은 인도남자’로 태어나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인도에서 누릴 수 있는 정치적 자유와 지위가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적 기회를 능가한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4월 인도 총선에서 차기총리로 유력시되는 마야와티 쿠마리를 보면 카스트 낮은 인도여성도 괜찮겠다 싶다. 그는 불가촉 천민계급 출신 여성이지만 부자다. 부패와 무관하지 않다. 공약이라곤 천민 몫의 쿼터를 늘려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는 것뿐인데도 오히려 그래서 인기다. 정치인이나 유권자나 저마다 카스트, 종교, 지역,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전체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집권 의회당은 인원도 엄청난 공무원 급여를 40%나 올리고 농가부채 175억 달러를 탕감한다는 포퓰리즘 공약을 내걸고 있다.
민주주의가 되레 인도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싼 자동차 나노를 만들겠다는 인도 최대 기업 타타의 계획은 지난해 벵골 주민들이 공장 터를 못 내놓겠다고 데모하는 통에 좌절됐다. 타타는 결국 구자라트에 공장을 세우기로 했고 나노 탄생과 일자리 창출은 그만큼 늦춰질 운명이다.
인도의 첫 총리 자와할랄 네루는 정부가 선거에 신경 쓰지 않고 발전의 길로 매진할 수 있는 중국을 부러워했다. 업계에선 “인도는 정부가 잠잘 때 자랐다”며 무능한 정부에 치를 떤다. “중국은 정부 덕분에 성장하고 인도는 정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한다”는 말은 농담 아닌 격언이다.
그런데도 델리와 뭄바이에서 만난 인도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중국의 굴기(굴起)는 세계가 두려워하지만 인도의 발전은 세계가 더 원한다. 이유가 뭔지 아는가?” 인도 외교부의 비슈누 프라카시 대변인은 “바로 인도의 민주주의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인도 최대의 통신사 PTI의 V S 찬드라셰카르 편집국장은 “중국 같은 독재체제 아래서의 경제성장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컨센서스를 이루면서 함께 가는 인도의 성장이 더 바람직하다는 거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기회이고 희망이었다. 지금이야 중국 정부가 다행히 유능하지만 설령 무능하다 해도 갈아 치울 방도가 없다. 선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을 선택한다
공식언어가 18개나 되는 복잡다단한 인도를 우리나라와 비교할 순 없다. 만일 중국이나 인도에서 태어날래, 한국에서 태어날래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한국인 대다수가 그래도 한국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엔 없는 민주주의와 인도가 못한 산업화를 우리는 성취한 국가다. 그것도 두 나라보다 훨씬 적은 인구와 국토, 자원으로.
틈만 나면 싸움질을 해대는 정치꾼이 원망스럽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가 밉지만 내 안에도 그런 모습이 숨어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인도 정부 초청으로 이곳까지 와서 발견한 건 뜻밖에도 대단한 잠재력의 나라,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우리나라 한국이었다.
―뭄바이에서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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