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경영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탁월한 리더십, 효율적인 팀워크, 치밀한 전략이 어우러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미국에서는 미식축구나 메이저리그 우승팀 감독이 기업의 최고 인기 강연자로 각광받는 등 스포츠에서 경영 화두를 찾는 작업이 일반화돼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과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끈 김경문(51) 두산 베어스 감독을 만나 ‘리더로서의 감독’이 기업인들에게 주는 시사점을 들어봤다. 김 감독의 인터뷰 전문은 DBR 27호(2009년 2월 15일자)에 실린다.》
3할대 타자가 세 타석에서 삼진을 당한 뒤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 이때 어떤 감독은 이 타자를 버리고 확률이 높은 다른 선수로 교체한다. 그러나 다른 감독은 “3할대 타자가 연속 삼진을 당했으니 이제는 안타를 칠 때가 됐다”며 그 선수를 믿는다.
누구나 인정하듯 김 감독은 후자에 속한다. 김 감독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른바 ‘신뢰의 야구’가 어떤 것인지 진수를 선보였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팽팽한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감동은 팬에게 안기는 보너스다.
김 감독은 최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뚝심 야구’, ‘된장 빅 볼’이라 불리는 김경문표 강공 야구를 지켜가겠다고 강조했다. 경험 많은 선수들의 노련함이나 안전한 승리를 보장하는 데이터에 의존하기보다는 젊은 선수들의 확인되지 않은 가능성에 승부를 걸겠다는 의미다. 그의 리더론 역시 ‘숨겨진 잠재력을 볼 줄 아는 지도자가 진짜 지도자’라는 말로 압축됐다.
Q: 2004년 두산 감독에 취임한 이후 5년 동안 네 차례 포스트시즌 진출, 세 차례 한국시리즈 준우승, 베이징 올림픽 우승 등을 일궈냈습니다. 현역 은퇴 후 감독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밟았나요.
A: 1991년 현역에서 은퇴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명장 보비 콕스가 이끄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했습니다. 한국야구는 일본야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저는 선수 시절부터 미국 야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미국 야구 관계자들이 선수들을 평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인스트럭터들이 ‘교육리그의 선수 중 누가 메이저리그에 갈 것 같으냐’고 묻기에 A를 찍었습니다. 그 친구의 자세나 현재 실력이 가장 나았으니까요. 그러나 인스트럭터는 제 눈에 ‘뭐 저런 친구가 다 있나’ 싶은 B를 찍더군요. 솔직히 처음에는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명색이 메이저리그 인스트럭터가 사람 보는 눈이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서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결국 그 사람의 안목이 맞았습니다.
미국 야구 지도자들은 특정 자세나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선수 개개인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끄집어내려고 애씁니다. 교과서적으로만 보면 B 선수의 자세가 굉장히 엉성해 보이고 가망성도 없을 것 같지만 이 친구에게 어떤 부분만 추가하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교과서적인 자세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는 편이죠. 물론 교과서도 중요하지만 다른 폼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면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는 것이 지도자의 임무입니다.
Q: 2년 연속 SK에 막혀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는데 아쉽지 않으신지요. 유독 강공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A: 한국시리즈에서는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못 살린 것이 패인이었습니다. 다 감독인 제 책임입니다. 저 역시 다른 감독과 마찬가지로 항상 우승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우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승을 못 하고 끝나더라도 확실한 제 스타일대로 야구를 하는 것’입니다. 프로야구에 8개 구단이 있는데 8개 구단 모두 똑같은 색깔의 야구만 한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습니까.
지도자라면 남과 다른 확실한 색깔을 보여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강공을 고집하는 다른 이유는 번트에 실패했을 때 그 책임이 선수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사인을 낸 감독이 욕을 먹어야죠. 제 잘못을 선수들에게 전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힘든 연습을 하는지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기회가 왔을 때 시원한 장타로 깊은 인상을 남기려고 엄청난 연습을 감내하는 것이지 번트를 대서 이기려고 그 연습을 견디는 것은 아니거든요.
Q: 그 ‘소신’이 결과가 나쁠 때는 ‘아집’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소신과 아집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A: 어떤 야구를 해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야구는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야구를 하려다 보면 제 야구는 없어집니다.
저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이 제 자신과 김현수 모두에게 보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고 선수에 불과한 김현수가 지난해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이 와중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했으면 어땠을까요. 오히려 선수 생활을 단명하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베이징 올림픽 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두 번 했어도 두산 팬을 제외하면 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 후에 분에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와중에 제가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했으면 얼마나 기고만장했겠습니까(웃음). 뭐라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 2등의 매력입니다. 밥 한 그릇의 고마움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죠. 매일 산해진미만 먹으면 그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지도자의 자기관리는 허명(虛名)을 경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김경문 감독은
공주고, 고려대를 졸업하고 두산 전신인 OB 베어스의 포수로 활약했다. 창단 첫해인 1982년 박철순과 배터리를 이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04년 두산 사령탑에 올라 감독 첫해 정규 시즌 3위에 올랐다. 이후 세 차례의 한국시리즈 준우승과 올림픽 야구 금메달로 ‘국민 감독’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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