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찍힌 7000여 대의 특정 차량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조직적이고 치밀한 연쇄살인범인 강호순을 검거한 일이나, 성형외과 500여 곳을 찾아다니며 결국 피해자를 확인하고 DNA 분석으로 사건을 해결하기까지 3개월여를 끈질기게 매달린 모습은 기초수사와 과학수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이루어낸 개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왜 좀 더 빨리 범인을 검거하지 못했나, 왜 좀 더 확실하게 범죄예방활동을 하지 못했나 하는 목소리가 사회 일각에서 나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흉악하고 계획적인 강력사건이라도 범죄현장의 유류품 확보 및 탐문 등의 기초적인 수사단서에 대한 성실한 수사와 과학적인 검증에 의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평범한 원칙을 경찰 스스로 확인했다는 점은 큰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와 같이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대로 경찰이 수사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은 아직 마련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경찰은 2005년부터 수사인력을 전문화하고 처우를 개선한다는 취지에서 수사경관제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지만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순찰지구대나 경찰서 내근요원보다 수사경찰이 비상근무에 동원되거나 당직근무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아 피로가 누적되고 승진 기회가 적어 사기가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나마 인력 충원이 여의치 않아 일부 경찰관은 수사 부서를 3D 분야로 인식한다고 한다.
시민이 범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도록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은 국가의 책무이며, 경찰은 범죄예방 및 신속한 범인 검거 등의 활동으로 그 책무의 한 축을 담당한다. 따라서 범죄로부터 안전하고 평온한 시민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수사경찰의 직무 여건을 좀 더 현실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작금의 범죄양상으로 볼 때 수사경찰의 직무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는 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수사부문에 많이 투자할수록 시민이 범죄로부터 더 보호받고 안전해진다.
경찰 역시 수사 인력의 전문화를 위한 다양한 교육과 과학적인 수사기법 개발 등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다양한 유형의 범죄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미 19세기 말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범죄학자인 장가브리엘 드 타르드는 범죄 모방의 원칙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범죄가 이전의 범죄를 대체한다고 예견한 바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연쇄살인 및 증오범죄는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한편으로는 2004년 7월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점차 자리 잡은 프로파일링 기법을 활용한 범죄수사의 활성화 및 수사경찰과 경찰기관 상호 간, 시민과의 공조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공조수사는 앞으로 무고한 범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필수적이라는 사실 역시 금번 강력사건에서 얻은 값진 교훈이다.
허경미 계명대 경찰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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