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정학]대학 연구실 안전불감증 ‘숭례문 교훈’ 잊지…

  • 입력 2009년 2월 11일 02시 57분


대학 연구실 안전불감증

‘숭례문 교훈’ 잊지 말아야

국보 1호 숭례문이 1년 전에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인이 목격하는 가운데 발화 후 5시간 만에 소진됐다. 화염에 싸인 채 ‘안전맹(安全盲)’을 퇴치해 달라는 숭례문의 절규가 귀에 들리는 듯 생생하지만 사회 전반의 안전맹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안전문화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또 다른 증상을 범위를 좁혀 교육기관의 연구실 안전과 관련하여 살펴보자.

우리나라에는 산업현장의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과 함께 산학연 연구실에 종사하는 학생과 연구자를 보호하기 위한 ‘연구실 안전환경법’이 있다. 후자는 2006년부터 시행됐다. 연구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법이 없는 일본을 비롯해 많은 국가가 부러워하는 법률이다. 그러나 이 법을 토대로 안전정책을 펴나가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연구환경안전과를 살펴보면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많다.

이 부서는 약 300개의 국공사립 대학과 100개의 국공립 출연연구소, 4000개의 기업체 연구실 등 국내 연구실 전체를 관장한다. 만든 지 3년도 채 안 된 만큼 새롭게 시작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 같을 것이다. 또 전국에 산재한 안전관리 대상 기관은 속속 늘어날 것이고 생물안전, 나노안전 등 새로운 이슈가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런 업무의 특성을 염두에 둘 때 현재의 과장 1명과 사무관 2명은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예산 역시 출범 당시(2006년)부터 15억∼20억 원을 맴도는 수준으로 교과부 소관 한 센터의 1년 예산 정도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직원의 경험 축적이 절실한데도 연구환경안전과장은 그동안 6명이나 바뀌었다. 평균 재임기간이 6개월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다. 연구실 안전을 내세우며 출범한, 모처럼 자랑스러운 이 부서의 현실은 안타깝다.

서울대는 2006년 2건의 사고 사례를 모든 교직원과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발표했다. 같은 해 일본 오사카대는 모두 245건의 사고 사례를 분석해 대조적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한 뒤에는 사고를 철저히 분석하고 기관 내 모든 종사자에게 알려 유사사고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 또 이를 자세히 기록해 후대가 교훈으로 삼도록 해야 안전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오사카대 같은 안전문화 풍토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미래를 예측해 보자. 이들이 대학교 총장 또는 학장, 연구소장, 기업의 최고경영자 등 기관장이 되었을 때 그 기관의 안전문화 수준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생각하면 국내 안전문화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은 것 같아 염려스럽다.

1970,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한국의 교수, 공무원, 주요 기관장은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안전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피교육자일 때 안전교육을 못 받았으니 안전지식이 없는 ‘안전맹’이 되어 사회에 진출하게 되고 자신이 속한 기관에서 안전에 관한 교육, 관리, 시설, 예산 등에 무관심한 것이다.

안전부서의 빈번한 직원 이동을 무심코 결재하는 기관장, 국보 1호 목조 건물인 숭례문에 민간인의 출입은 허가하면서도 화재경보기나 스프링클러의 장치를 망각하는 관리인, 안전교육도 시키지 않고 학생들의 실험실 출입을 방관하는 교수, 사고가 나면 우선 은폐부터 생각하는 기관의 부서장은 모두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불행한 안전맹이다.

미래에 이들을 닮아갈 안전맹을 여전히 양산하는 전국의 대학을 어떻게 치유할지도 큰 과제다. 머지않아 대학에서 “우리 지도교수님에게도 안전교육을 시켜주세요”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빗발칠지도 모른다.

600세 숭례문의 실체는 소진되고 없으나 ‘안전맹’을 퇴치해 달라는 숭례문의 절규는 가슴속에 간직해야 한다.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에서 1431년 프랑스 국민의 영웅 잔 다르크가 화염에 싸여 한 줌의 재로 변한 자리에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무덤도 없는 잔 다르크여, 영웅의 무덤은 후세인(後世人)의 가슴에 있습니다.”

이정학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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