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죽음의 산불놀이

  • 입력 2009년 2월 11일 02시 57분


대보름날 경남 창녕의 화왕산에서 빚어진 불놀이 대참사로 관광객 4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중태에 빠지거나 중경상을 입었다. 해발 757m의 산 정상에서 야간에 불놀이를 벌인 것 자체가 대형 인명(人命)사고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짓이다. 화왕산은 불길이 빠르게 번질 수 있는 마른 억새로 뒤덮인 산이다. 더욱이 국내외에서 산불로 인한 엄청난 재앙을 목격하면서도 1995년 이후 이런 산불놀이를 여섯 번이나 계속했다니 이해할 수 없다. 화왕산 일대는 바짝 메마른 상태였고 불놀이 행사 직전 현지 관측소에서 잰 풍속(風速)은 깃발이 펄럭일 정도인 초속 4.5m였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수시로 바뀌는 산 정상에서는 아예 불놀이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300여 명의 안전요원이 불길에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들을 거의 막지도 않았다고 하니, 불길이 삽시간에 관광객들을 덮친 참변을 스스로 불러들인 셈이다.

강풍이나 돌풍이 불면 산불의 불티가 몇 km까지 날아갈 수 있다. 2005년에 천년 고찰 낙산사의 목조건물과 15세기 보물 479호 동종(銅鐘)이 삽시간에 소실된 것도 인근 산불에서 날아온 불티가 원인이었다. 현재 호주 빅토리아 주에서 가뭄과 이상 고온에 시속 100km의 강풍을 타고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며 주택 750채를 태우고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 역시 불티 때문에 서울 면적의 5배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핵폭탄 10개를 떨어뜨린 것과 맞먹는 피해 규모다.

이처럼 산불은 지진이나 해일에 가까운 피해를 몰고 올 수 있는 큰 재앙인데도 창녕군은 안이한 발상에서 산불놀이를 벌인 것이다. 군(郡)당국은 사고가 난 뒤 “억새밭 둘레에 30∼50m 폭의 방호선(防護線)을 구축해 그 안의 풀을 베어내고 물을 뿌리는 안전대책을 세웠다”고 변명했지만 참으로 무지한 소리다. 산불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예방 책임이 있는 소방당국이 이렇게 위험한 행사가 반복됐는데도 사전에 막지 않은 것 역시 안전 불감증을 드러낸 큰 잘못이다. 창녕군 외에 이런 불놀이 행사를 여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차제에 모두 중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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