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로 외국인 보듬은 스위스
이런 스위스가 외국인 문제로 2년 넘게 몸살을 앓았다. 우파정당인 국민당은 2007년 비유럽 외국인차별법을 도입하려다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외국인의 귀화요건을 강화한 법안을 밀어붙이려다 법무장관이 옷까지 벗었다. 그러자 제1당인 국민당이 연방내각을 탈퇴했다. 100년도 넘은 스위스의 독특한 정치시스템이 결국 파국을 맞았고 국론 분열은 갈수록 심해졌다.
최근 유럽연합(EU)과의 노동협약 국민투표를 앞두고 스위스 정국은 요동쳤다. 협약이 갱신되면 3년 전 회원국이 된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가난한 노동자들까지 몰려들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야당이 된 국민당은 혈안이 됐다. ‘검은 까마귀(외국인 노동자)’가 스위스를 쪼아대는 선동적인 포스터까지 내걸었다. 미증유의 경제대란에 편승해 유권자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네거티브 전략을 편 것이다. 8일 투표함 뚜껑이 열렸다. 찬반이 팽팽할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유권자 60%가 찬성표를 던졌다. 눈앞의 일자리를 넘어 멀리 내다보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스위스에 비하면 아직 한국은 다문화라는 표현조차 쓰기 민망하다. 외국인 거주자(2008년 기준)가 8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7%, 단기 및 불법체류까지 포함해야 115만 명 선. 그야말로 ‘왕초보’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은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법무부는 6년 뒤 외국인 거주자를 167만 명으로 추정한다. 단기 및 불법체류를 포함하면 20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이다. 추규호 법무부 외국인정책본부장은 “지금부터 발상을 전환하고 열린 마음으로 ‘질서 있는 개방’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동아일보가 2월 2일자 1면 머리와 4, 5면을 털어 다문화 연중시리즈를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메리카 대륙에 흑인 노예가 발을 디딘 지 근 200년 만에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은 개방적인 미국의 저력인 동시에 ‘다문화의 힘’이다. 미국만 해도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야 비로소 ‘멜팅팟(용광로)’에서 다문화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 선회를 시작했다. 그전까지 미국의 인종 분리정책은 선진 문명사회의 기준으로는 야만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고 외치며 피울음을 토했겠는가.
미국의 그 시절에 비해 우리 형편은 훨씬 낫다. 그러나 혈통의 순수성만을 강조하는 허구적인 단일민족 의식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인간차별의 우려에 대해 유엔이 넌지시 지적했을 정도다. 다문화는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절실하게 우리가 보듬고 껴안아야 할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다문화가 활짝 꽃 피어, 한국의 브랜드 가치와 나라 경쟁력이 높아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후손위해 ‘화합의 씨앗’ 뿌려야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에 200∼300년간 참나무를 묻어둔 뒤 꺼내 태우면 깊고 그윽한 향기가 난다. 이것이 향 중의 향으로 치는 침향(沈香)이다. 미당(未堂)은 ‘질마재 신화’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陸水)와 조류(潮流)가 합수(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들이나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그렇다. 다문화의 씨앗이 싹이 터 탐스러운 열매가 열리는 그날이 오려면 질마재 사람들이 참나무 토막을 갯벌에 묻던 그 마음부터 헤아려야 할는지도 모른다.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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