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변동에 따른 채권 가격을 암산으로 계산기만큼 정확하게 계산해내기 때문에 필자가 ‘채권의 달인’이라고 별명을 붙여준 전업 채권투자자인 친구가 있었다. 그는 당시 수익률이 30%까지 급등한 장기채(주택채 20년)를 매집하고 있었다. 그가 사 모은 규모에 놀라 “너무 위험하지 않으냐”고 걱정하는 필자에게 그는 이렇게 물었다.
“시중 금리가 절반으로 떨어지면 내가 산 채권의 투자수익률이 얼마가 될 것 같으냐.”
필자는 “현재 30%의 시장금리가 15%로 떨어진다고 가정하면 금리하락폭(15%포인트)에 듀레이션을 곱하면 대략 200%가량의 투자수익률이 나오겠네.”
이론적 계산상으로는 그랬지만 실제 금리가 빠르게 하락할 것 같지 않아서 자신 없이 대답했던 필자에게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내 육감으로 보건대 금리는 그보다 더 떨어질 것 같다. 전문가들이 계산하고 있는 동안 나는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그로부터 불과 몇 달 뒤 그가 가진 채권의 수익률은 5%로 떨어졌다. 그는 매입한 가격의 5배의 가격(투자수익률 400%)으로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모두 팔아치웠다. 그는 그 돈으로 바닥에 있던 증권사의 주식을 사서 증권사의 대주주가 됐다. 그가 주식을 매입한 후 얼마 안 있어 주식시장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지금 미국 채권시장 상황도 그때와 비슷한 조짐이 보인다. 미국 채권시장은 극도의 안전선호 현상으로 국채의 경우 수익률이 ‘제로(0)’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반대로 회사채의 경우는 평소의 우량회사채도 정크본드 수준으로 수익률이 높아져 있다(채권 가격은 폭락). 국채와 회사채가 양극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국채에 버블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단기국채(T-Bill·1개월) 수익률은 바닥을 벗어나는 턴어라운드 신호가 나타나고 있고 장기 국채(T-Bond·10년)의 경우에도 연초 이후 수익률이 1%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즉, 고점 대비 채권 가격이 10%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안전자산인 국채에서 유동성이 조금씩 이탈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면 안전자산인 국채에서 이탈하는 자금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일부는 우량회사채나 지방채 쪽으로 조금씩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채나 우량회사채도 정크본드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져 있지만 신규자금의 유입으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 정크본드 수익률은 연초 18%에서 현재 13%로 5%포인트나 떨어졌고 정크 스프레드(국채수익률과 정크본드 수익률의 차이)도 5%포인트 정도 줄었다. 위험자산으로 유동성이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채권시장에서 이탈하는 자금이 아직 주식시장으로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있지는 않지만 채권수익률의 하락은 머지않아 주식시장으로의 자금유입을 재촉하는 신호일 수 있다.
박춘호 이토마토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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