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기간 상가세입자 생계 막막
상가세입자에게 우선분양권을 부여하겠다는 조치는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재개발 이후 세입자가 재정착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건물의 가격이나 임차료가 재개발 전에 비해 크게 올라 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돈이 필요한 우선분양권은커녕 우선임차권을 준다 하더라도 세입자의 임차료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 실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우선임차권을 건물주와 세입자의 당사자간 계약문제라서 정부가 직접 관여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이번 대책에서 제외했다.
문제는 “당사자간 계약이므로 개입하기 어렵다”는 정부의 소극적 자세이다. 따지고 보면 주택재개발(주택재개발사업, 주거환경개선사업)의 경우 주거세입자의 재정착을 위해 저렴한 임차료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하물며 주택재건축 사업에 대해서는 해당 사업과 관련 없는 세입자를 위해서도 임대주택 비율을 의무화하고 있다. 주거세입자와는 사정이 다르더라도 당사자간 계약이라는 이유로 동일한 곤경에 처한 상가세입자에 대해 정부가 인색한 태도를 취해서는 곤란하다.
주거세입자를 정부가 나서서 보호하는 일은 주거복지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상가세입자의 문제도 사회복지정책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필요에 따라서는 공공임대상가를 공급하여 상가세입자의 재정착을 도모할 수 있다. 실제 용지 확보의 어려움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지는 않겠지만 주거세입자를 위한 순환재개발 방식도 상가세입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 특히 재개발 기간 중 지속적으로 상권을 유지해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상가세입자의 경우 순환재개발 방식에 의한 임시상가의 개설은 매우 절실한 문제로, 이를 위해 도로나 공공용지 등 국공유지를 활용할 수 있게끔 정부가 지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재정착(또는 이주)에 따른 임차료 상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재정 지원이다. 담보 대출이 어려운 영세 상가세입자는 신용담보력이 떨어져 임차보증금 마련을 위해 비공식금융에 의존함으로써 높은 이자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이들이 공식금융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신용보증을 해 주거나, 국민주택기금에서 전세자금을 저리로 융자해 주듯이 공공금융을 통한 지원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참에 매년 재산세와 함께 부과되는 도시계획세의 용처를 분명히 하여 재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도시·주거환경정비기금도 제대로 된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공차원 신보·기금으로 지원을
상가세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재개발을 신탁방식으로 수행함으로써 세입자가 재정착하여 상권을 다시 추스르는 기간 중 토지·건물주에게 배분되는 개발이익의 시점을 조정할 수 있다. 그 대신 토지·건물주에게는 세입자와의 갈등에 따른 사업 지연의 금융비용을 절감할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용적률 등 토지이용규제 권한을 갖고 있고 필요에 따라 기반시설을 지원할 수 있는 공공의 조정 또는 중재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마음만 먹고 상가세입자 문제를 공공정책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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