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지금까지 회원국 간에 사람과 재화, 서비스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다는 단일시장 원칙을 발전시켜 왔다. 회원국들은 무역정책은 물론 농어업정책, 지역개발정책까지 함께 조율한다. 이 중 16개국은 유로화를 공식화폐로 삼는 유로존에 참여했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환전하지 않고 한 가지 화폐로만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편한지 유럽을 다녀보면 알게 된다. 국경이란 것도 입출국 수속 없이 고속도로에서 도로표지판만 달라지는 곳이지만 말이다. 하나의 화폐를 쓰는 유로존의 힘은 유럽 사람들을 더 빠르게, 그리고 밀접하게 묶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EU 단일시장의 목표는 ‘함께 잘살자’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깊어지면서 회원국 간에 ‘나부터 살자’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그만큼 다툼도 잦아지고 있다. 아일랜드는 자국 은행의 예금자에게 무제한으로 예금지급을 보장했다가 옐로카드를 받았고, 영국 석유산업 노동자들은 이탈리아 스페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시위를 벌였다. 독일과 영국은 부가가치세 인하 문제로 한바탕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도 각국은 다른 나라의 구제금융정책이 자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유럽 통합(統合)의 꿈은 역설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환멸에서 그 싹이 텄다. 과도한 민족주의 때문에 수백만 명이 희생됐다는 반성에서 시작해 아예 정치까지 통합해보자는 유럽합중국(合衆國)의 원대한 꿈이 생겨난 것이다. 그 이상(理想)은 인류의 두 번째 큰 꿈이라고 볼 수 있다. 나라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상을 생각하자는 뜻에서 생겨난 유엔이 그 첫 번째라면, 그 두 번째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금융위기 속에 거칠 게 돌아가는 세계를 보면 그 꿈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50년이나 걸렸지만 결국 유럽합중국의 디딤돌이 될 단일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회원국 간 균열조짐을 보이는 요즘에도 통합을 향한 조치들은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20세기 들어서만 두 차례나 싸운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는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의 스트라스부르 교외에 독일군을 주둔키로 했다고 한다. 알자스 지방은 양국 간 오랜 분쟁지역으로,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무대이기도 하다.
통합을 향한 걸음은 앞이나 옆으로, 때론 뒤로도 갈 것이다. 아직은 멀고 험한 길이고, 심지어 본래부터 갈 수 없는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실험은 가치 있는 일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팍팍한 세상에 ‘담대한 희망’ 하나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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