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아람코와 에쓰오일의 경우

  • 입력 2009년 2월 18일 19시 56분


2차 오일쇼크가 덮친 1979년 2월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세 나라에 정부 대표단을 긴급 파견했다. 그보다 두 달 전 경제부총리에서 물러난 남덕우 대통령경제담당특별보좌관을 단장으로 한 원유(原油)확보 교섭단이었다. 다음해 5월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직접 사우디를 방문했다. 유가 급등에 따른 충격은 둘째 치고 수입물량 구하기도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사우디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1991년 5월 쌍용정유(현 에쓰오일) 지분 35%를 인수해 1대 주주가 됐다. 4억 달러 규모의 투자계약과 함께 20년간 원유를 장기 공급하는 계약도 체결됐다. 유공(현 SK에너지),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쌍용정유 등 주요 정유회사의 품질 및 가격 경쟁이 본격화한 것도 이때부터다.

아람코의 한국 투자는 산유국과 소비국 간의 성공적 합작사례로 꼽힌다. 우리 경제는 숙원이었던 안정적 원유 공급원을 확보했고 국내 정유산업은 경쟁을 통해 성장했다. 지난해 한국의 석유제품 수출액은 378억 달러로 선박에 이어 수출 2위의 효자품목으로 떠올랐다. 아람코도 확실한 수요처이면서 꾸준히 투자 수익을 안겨준 에쓰오일을 ‘복덩어리’로 여긴다. 칼리드 A 알팔리 아람코 총재는 작년 10월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면서 “투자 결정을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직접투자로 들어오는 외자(外資)는 단기 포트폴리오 투자와 달리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설비투자와 고용 창출 등 전체 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크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 말레이시아는 ‘외자 탈출’에 따른 피해가 비교적 작았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말레이시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 가운데 직접투자 비중이 높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세계 동시불황의 충격파가 커지고 있다. 한국 일본 미국 유럽 할 것 없이 경제성장률은 예상보다 더 추락하고 금융시장도 다시 불안하다. 내수와 수출이 함께 어려운 지금 건실한 외자 유치는 성장, 고용, 금융시장 안정에 모두 도움이 된다. 외국 기업들도 ‘내 코가 석자’이긴 하지만 원화 가치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가격 측면에서 한국은 투자 매력이 적지 않다.

국내에 진출해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는 외국 기업에 대한 맹목적 반감은 어리석다. 돈의 출처와 운용 성격에 관계없이 ‘외국인 투자는 무조건 선(善)’이라는 도그마도 금물이다. SK와 KT&G의 경영권을 위협한 소버린, 칼 아이칸 같은 투기자본은 무늬만 직접투자였지, 경영권 장악에 성공했다면 한국경제에 재앙을 초래했을지 모른다. 국내 기업을 인수한 뒤 경영정상화보다 기술 빼돌리기에 바쁜 외국 자본 역시 그리 좋은 파트너는 아니다. 아람코의 에쓰오일 투자처럼 서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는 상생(相生) 모델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외국인 직접투자를 늘리려면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많다. 하지만 많은 외국인이 대한(對韓)투자의 고질적 걸림돌로 꼽는 경직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운동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위기의 시대’에 우리 경제의 한 돌파구가 될 수도 있는 외자 유치를 위해서도 노동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 일부 ‘노동귀족’의 기득권을 위해 언제까지 다수 국민과 국가가 희생해야 하는지도 함께 생각해볼 때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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