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 투자, 강요나 읍소로 될 일이던가

  • 입력 2009년 2월 24일 02시 57분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기업을 향해 “금고에 100조 원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즉시 금고 문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투자를 촉구했다. 박 대표의 심정을 누군들 이해 못할까. 기업이 투자를 해야 일자리도 생기고 소비도 늘어 경기가 회복된다. 투자를 꺼리고 고용을 줄이면 내수가 위축돼 생산과 투자도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러나 읍소하고 압박한다고 될 일이라면 기업들이 진즉 투자에 나섰을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권도 기업인들을 만나 투자를 독려하고 투자계획서까지 받았지만 헛일이었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투자보다는 현금 확보를 통해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갑자기 신용경색이 악화돼 자금난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동유럽발(發) 금융위기로 다시 위기감이 고조돼 올 하반기쯤으로 예상됐던 경기회복 시기가 더 늦어질 가능성도 크다. 안팎의 경제 여건이 이렇다면 기업으로선 불확실한 투자보다는 생존을 당면 과제로 삼는 게 당연하다.

투자할 때라고 판단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투자하는 게 기업의 생리다. 정부가 강요한다고 해서 투자하고, 하지 말라고 해서 투자를 안 한다면 정상적인 기업이라고 하기 어렵다. 삼성도 과거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에 투자했기에 오늘날 세계적 기업인 삼성전자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정부로선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공적자금으로 투입하기 전에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금융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은행 대출이 정상화되고 투자여건이 개선된다.

정치권은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방송법 개정 등 투자활성화와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입법을 조속히 마무리 지어야 한다. 법안 처리가 지연될수록 경제회복은 늦어지고 기업과 국민이 치러야 할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기업에 투자하라고 압박할 게 아니라 스스로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바란다. 기업투자를 가로막는 제1의 걸림돌이 정치권이라는 얘기가 더는 안 나와야 투자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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