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의 단편 ‘벤자민 버튼의 희귀한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이 할리우드 영화로 화려하게 재탄생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그럴듯한 우리말 제목과 함께.
벤자민이 태어났던 미국 뉴올리언스에는 거꾸로 가는 시계가 있다. 1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시계공이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들었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벤자민은 뉴올리언스에서 80세 정도의 외모를 갖고 태어나 시간이 흐를수록 젊어진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준수한 외모를 가진 젊은이로 변모한 벤자민은 아름다운 데이지와 사랑에 빠져 딸 캐롤라인을 낳는다. 그러나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벤자민은 점점 어려지는 자신이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데이지에게 모든 것을 남기고 홀로 떠난다. 얼굴 가득한 주름 속에 인생의 체취가 깊게 배어 있는 데이지 앞에 얼마 후 벤자민은 10대 소년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는 결국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데이지의 품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北경제력, 1973년 南에 추월당해
지난 토요일 아침 아내와 함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감상하면서 문득 한반도 북녘 땅의 현실을 떠올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간은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시간과 동일하게 가고 있는 것일까?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1950년대 초부터 1970년대 초까지 북한의 모습은 남한보다 훨씬 ‘성숙’했다. 경제수준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교력에서도 남한을 세차게 밀어붙일 정도였다. 그러나 1973년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에 추월당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시간이 거꾸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남한은 경공업에서 시작해 중화학공업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대한민국의 시간은 바르게 가고 있었다.
거꾸로 가는 북한의 시간을 다소나마 늦추기 위해 남한은 북한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햇볕정책’이란 이름 아래 대규모 지원을 하기 시작했고, 분단 이래 처음으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마치 벤자민과 데이지가 만나 사랑에 빠진 것처럼 남북정상회담의 호소력은 대단했다. 남한은 북한에 상호주의를 내세우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베풀었다. 2006년 10월 핵실험을 통해 북한이 남한에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10월 또다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돼 남한이 북한에 제공할 값비싼 ‘선물’ 목록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시점을 전후해 ‘일방적인 사랑’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2008년 남한은 ‘주고받는 사랑’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무조건적 사랑에 익숙해진 북한은 이러한 남한을 상대로 ‘결별’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결국 벤자민은 데이지에게로 돌아왔다. 거꾸로 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받아줄 상대는 결국 데이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을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는 상대는 남한이라는 사실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기에 권력 세습을 가속화하려 하고, 세습 과정에서 군부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군(先軍)정치를 강화하고 있다. 선군정치를 강화하는 한 김 위원장으로선 군부가 원하는 핵무기를 포기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벤자민이 데이지에 돌아오듯
김 위원장은 이러한 ‘마(魔)의 삼각형’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한과 미국 간의 동맹관계를 이간질하여 미국을 새로운 애정 상대로 삼으려는 계획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지난주 서울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북이 남과 대화하지 않는 한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북한이 살 길은 비핵화와 개방이다. 김 위원장 자신이 군부를 직접 설득하고 북한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 순간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을 돕기 위해 진정한 노력을 다할 것이다.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역사적 시간을 거스를 경우 북한은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데이지의 품속에서 숨을 거두는 벤자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