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 마케팅은 생산단위별 이윤은 적지만 판매량이 크기 때문에 유통 물류비 등을 줄이면 비즈니스 모델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나,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80%를 이루는 ‘사소한’ 고객의 가치에 집중하는 ‘롱테일’ 법칙과도 유사한 셈이다.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1983년 설립한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은 BOP 전략의 성공 사례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유누스 박사는 우연한 기회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융자를 해주자 그들이 자립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을 보고 무담보 소액대출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이는 이제 전 세계에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융자) 제도로 자리 잡았다.
그라민 은행의 덕목은 무엇보다 ‘가난 구제’라는 사회 이슈를 ‘금융(기업) 비즈니스’와 접목해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창안한 점이다.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자활 의지를 북돋움으로써 그들과 은행이 윈윈하는 금융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유누스 박사는 자서전에서 “공짜로 주는 자선이나 원조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며 무조건적 지원의 위험을 지적했다.
국내 문화 시장에도 이런 BOP 마케팅이 필요한 듯하다. 지금까지 대중문화를 제외한 국내 문화 시장은 사실상 충성도 높은 우량 고객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해왔다. 5000만 명이 안 되는 인구 규모에 따른 시장의 협소함, 문화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저변이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티켓 가격을 내리고 관객의 범위를 넓히는 선순환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공연계에서는 클래식 공연의 유료 관객 규모는 15만, 대중화 추세에 있는 뮤지컬도 25만 명이라며 미래 또는 잠재 고객의 개발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발레는 1만 명이, 현대무용은 1000명도 안 된다.
클래식 공연 기획사 빈체로의 이창주 대표는 “관객이 제한돼 있어 표를 팔아 수지를 맞추기보다 기업 후원 등을 기대해야 한다”며 “기업도 클래식 마케팅을 많이 하는데 그 방향을 청소년이나 저소득층을 비롯한 잠재 고객을 개발하는 쪽으로도 맞춰야 ‘시장’이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하는 14개 국립미술관과 박물관의 무료 관람, 소외계층에 문화예술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생활공감 문화열차’를 그런 대책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한진중공업의 ‘친구야 문화예술과 놀자’를 비롯해 삼성 현대 금호아시아나 등 여러 기업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펼치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이 ‘문화는 공짜’라는 인식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유누스 박사의 말을 빌리면 무료 관람이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한 문화 비즈니스의 기초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 체험을 통해 무대의 판타지를 느낀 이들이 돈을 내고 티켓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티켓 가격의 지원 등이 또 다른 해결책이 될 것이다. 문화 비즈니스에서도 그라민 은행처럼 저소득층을 시장의 고객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마이크로 컬처’ 같은 방안이 나왔으면 한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