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전 세계는 아직 그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지 못한 듯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가 불거진 지 1년이 지났고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많은 게 숨 가쁘게 돌아갔건만 주요 은행의 부실 규모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것만 봐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알 수가 있다.
금이 그야말로 금값이 됐고 사람들이 여전히 달러 유동성을 구하려 동분서주하는 것을 보면 세계금융이 아직 위기의 터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가 있다.
문제는 전 세계가 미국의 이런 모습을 숨죽이고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뾰족한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미국 프로농구나 미식축구와 같은 스포츠 게임과는 다르다. 결과에 따라 많은 국가의 운명이 바뀔 수 있고 어떤 광란의 태풍이 또 불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껏 터진 미 은행의 손실이 몇조 달러든, 은행이 국유화가 되든 안 되든, 그들의 지급결제 능력이 어떤 상태든 시장이 희망하는 것은 좀 더 파격적이고 통념을 뛰어넘은 ‘고단위 정책처방’인 것이다.
물론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안정된 경제 기초체력(펀더멘털)을 갖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수출이 국민경제를 주도하다시피 하고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한국경제의 특성상 글로벌 금융전쟁의 유탄을 완벽히 피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이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는 것들’에 노출돼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성향의 투자자가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사람과 공격을 최선의 방어로 삼는 투자자다. 어떤 유형의 투자든 그것은 개인성향과 전략적 선택의 문제다. 다만 이번 금융위기 전까지 시장은 장기간 위험자산을 한 방향으로 공격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고, 최근 위기의 원인은 그 결과물이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위기는 언젠가는 끝나고 반드시 기회로 연결된다. 하지만 냉정하고 객관적인 현상 파악을 뒤로한 채 막연한 낙관론만 펴기엔 아직 세계경제에 ‘만일의 것들’이 너무 많이 숨겨져 있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아직 ‘진행형’이고 한국경제는 그 영향을 크게 받는 ‘수동형’이란 점이 마음에 걸린다.
김 한 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