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문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은 미국 일본 중국에 크게 경도되어 왔다. 경도라기보다는 지배되어 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최근 다문화주의에 대한 논의는 미국과 동북아 중심적인 세계관을 탈피하여 지금까지 주목하지 못하던 다른 세계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자 하는 노력을 반영한다. 한국의 다문화주의와 동남아의 관계는 이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관광 투자 무역에서 동남아는 우리 인식보다 우리의 삶에 이미 더 가깝게 다가와 있다.
최근 일본과 중국에서 한류 열풍이 식어간다는 우려 섞인 관측이 나오지만 동남아의 한류 열기는 여전하다. 한국 드라마가 안방극장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방영되고 있다. ‘동방신기’와 비에 열광하는 소녀팬의 행동을 동남아 부모는 우려와 놀라움의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 연예인의 외모와 생활양식을 모방하기 위해 한국의 옷 화장품 장신구 가전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욕구도 강하다. 한류를 통해 한국이 동남아인의 삶과 의식에 매우 가깝게 다가섰지만 방식이 일방통행적이라는 동남아인의 우려와 불만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과 동남아가 가깝게 다가섰는데 교류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한국인의 성찰은 크게 부족하다. 한국인의 시각 속에 동남아는 우리보다 가난하고 뒤떨어졌다는 고정관념이 매우 견고하다. 그 고정관념은 동남아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 때로는 시혜적 우월감으로 표현되곤 한다. 모든 것을 경제적 잣대로 평가하는 개발 이데올로기가 우리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벗겨내면 동남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무지와 편견에 기인하고 있음이 드러날 것이다.
역사학자 앤서니 리드는 동남아를 ‘아시아의 지중해’라고 했는데 동남아가 오래전부터 동서교역의 교차로 역할을 담당했고 인도 중국 아랍 서양의 문화가 깊숙이 침투하고 토착화하는 문화적 용광로였음을 시사한다. 불교 힌두교 도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동남아 세계에 공존하고 있으며 이들 종교에 기초한 문학 춤 음악 건축 축제가 정교하게 발전했다. 동남아 문화의 특징으로 꼽히는 문화적 다양성은 오랜 문화적 교류와 수용, 창조의 결과이다.
진정한 다문화주의적 감수성과 태도는 쌍방향적 문화소통과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는 노력에 의해 조금씩 형성되어 간다. 한국 사회가 이러한 방향으로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아직은 구호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 크게 미흡한 상황이다. 한국과 동남아의 관계는 한국의 다문화주의가 시험받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때 동북아와 동남아를 함께 아우르는 동아시아를 우리의 중요한 외교지평으로 설정하는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였지만 처음의 활력을 잃고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였다. 6월 초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이벤트성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과 동남아 간의 소통을 진작시키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오명석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한국동남아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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