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민주당의 위선

  • 입력 2009년 3월 3일 01시 15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산참사 직후인 1월 22일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에게 “정치라는 게 가난한 사람을 위한 거지, 잘사는 사람을 위해 정치가 무슨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그는 “(용산참사에서) 모멘텀을 타고 2, 3월에 잘하면 4월 재·보궐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훈수까지 했다.

전직 대통령이 민주당 재·보선대책위원장 같은 소리를 한 건 문제다. 물론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치’를 강조한 것이 잘못은 아니다. ‘잘살고 힘 있는 사람’을 위해 정치한다고 떠드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벗’임을 자임해 왔다. 3대 비전의 하나도 ‘중산층과 서민이 도약하는 민생제일주의 경제’로 돼 있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민주당은 자신들의 비전과 거리가 먼 정치 행태를 보여 주고 있다.

가난하고 힘없다는 용산참사 사망자들을 위해 민주당이 한 것이 무엇인가. 지난달 1일 서울 청계광장 집회에 참가해 경찰과 대통령을 규탄하고 지난달 30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정도다. 주요 정당이 모두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서민의 정당이란 민주당은 지난 40일 동안 재개발 철거민과 세입 상인들을 위해 뭘 했는지 돌아보라. 용산참사를 그저 정부 흔들기의 재료로만 쓰고 있지 않은가.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재벌과 부자를 위한 정당이라고 비판한다.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정치를 하고 있는가. 민주당은 2월 한 달 내내 미디어관계법을 ‘MB악법’이라 주장하며 입법 저지에 몰두했다. 민주당의 미디어법 저지 투쟁 때문에 수십 건의 민생 관련법안들이 제때 빛을 보지 못했다.

경제 한파로 중산층은 서민으로, 서민은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추위를 더 탈 수밖에 없다. 금산(금융자본과 산업자본)분리 정책 고집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방해한 것도 민주당이다. 진실로 서민의 벗이라면 단 하나의 일자리라도 만들기 위해 한나라당보다 더 노력해야 정상이다.

취업 준비자와 포기자를 포함한 실업자가 346만 명을 넘었을 정도로 실업대란 상황이다. 일자리 창출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미디어법은 이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목숨 걸고 본회의 상정을 막아내라”는 전국언론노조와 방송 기득권세력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고 있다.

정치는 경제사회적 갈등을 국회로 끌어들여 협상과 타협을 통해 차선의 해결책이라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까지 입법 훼방으로 봉쇄하며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매달리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공화당의 연속 집권을 8년으로 막고 지금 여당이 됐다. 민주당의 집권은 정치투쟁의 결과가 아니다. 미국인들에게 대안정당임을 입증한 결과다. 8년 만에 야당이 된 공화당도 새 집권당 발목잡기에 혈안이 돼 있지는 않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지난 1년 동안 반 토막 났는데도 왜 자신들의 지지율은 10%대를 못 벗어나는지 알아야 한다. 민주당은 ‘국민통합의 정치와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을 강령 제1조로 하고 있는 정당이다. 그러나 실제로 하는 일은 분열의 정치, 민주절차 파괴의 정치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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