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로 타격을 입은 기업들이 비용절감 방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불황의 속성상 기업들은 ‘어떻게 비용을 줄일 것인가’보다 ‘어떻게 공급과 수요를 맞출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비용을 10% 절감해도, 매출이 20% 감소하면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다. 이에 따라 마케팅 전문가인 안상훈 마케팅 인텔라이트 대표가 불황기 기업의 마케팅 혁신법을 동아비즈니스리뷰(DBR)에 연재한다. 기사 전문은 DBR 29호(3월 15일자)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비용 절감보다 마케팅의 고도화를 통한 이익 극대화에 주력하기 위해 사용할 마케팅 혁신법이 바로 VfM(Value for Marketing)이다. VfM은 적합 고객(Right Customer)을 파악하는 기본 전략(Overall Strategy), 적정 가격과 가격 맞춤화 방안을 제시해주는 가격 최적화(Value for Pricing), 불필요한 현금할인과 부대 유통비용을 절감시켜 주는 유통 최적화(Value for Delivery), 고객의 지불 의향을 측정하는 오퍼링 최적화(Value for Offering)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불황기 기업은 적합 고객의 개념부터 재정의해야 한다. 모든 기업은 자신의 자원과 역량에 부합하는 차별화 전략을 취한다. 적합 고객은 이 차별성을 기꺼이 수용하는 고객이다. 즉 게임기 성능을 우선시하는 젊은 남성은 소니의 적합 고객이지 닌텐도의 적합 고객이 아니다. 불황기에는 비용 절감 및 새로운 이익창출 기회가 오직 적합 고객에게서만 나온다. 하지만 기업들은 자신들의 고객 기반을 적합 고객 이상으로 확장하려는 우를 범한다.
기업용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A사는 자사 서비스에 이동전화를 접목해 일반인에게 공급하기로 하고, 저렴한 요금과 다단계 판매망을 무기로 가입자를 적극 유치했다. 가입자와 매출이 잠깐 늘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이동전화 업체에서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상당한 마케팅비를 지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이동전화의 고품질 서비스에 익숙한 고객들은 A사가 유치 비용을 회수하기도 전에 불만을 표하며 가입을 해지했다.
A사는 20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이동전화 시장에서 1%의 고객만 끌어와도 상당한 수익원이 될 것이라 계산했다. 문제는 이 2000만 명 중 단 1%도 A사의 적합 고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후 A사는 다시 적합 고객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기업 고객에게 다양한 업무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 실적을 회복했다.
가격 정책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운송회사 C사는 자사의 운임 책정 때 학생 할인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요금 할인이 손실을 가져온다는 우려가 높았지만, 공공재라는 서비스의 특성상 학생들의 요금 부담을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고객들의 지불 의향을 계량 분석하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30%의 학생 할인을 적용할 경우 이에 따른 학생들의 이용률 증가가 할인 손실분을 만회하고도 남는 반면, 23%의 할인을 적용하면 이에 따른 학생들의 이용률 증가가 할인 손실분에 미치지 못했던 것. 일반적 예상과 달리 더 많은 할인을 제공하는 것이 회사에 유리했다. 고객들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는 불황기에는 절대 감이나 관행에 의지해 가격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
유통업체 재정비도 중요하다. 통신 사업자인 D사는 신규 가입자의 70%를 위탁 대리점에 의존해 유치했다. 문제는 해가 갈수록 대리점 통제력이 약화되고 고객유치 비용은 급증한다는 데 있었다. 1000여 개에 달하는 위탁 대리점의 성과를 분석하니, 상위 20%에 속하는 175개 대리점이 전체 실적의 70%를 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군소 대리점이 유명무실한 존재였다는 의미다.
고객 조사를 해보니 대리점의 효용성은 더욱 낮게 나타났다. 절반 이상의 고객들이 대리점보다 인터넷, 콜센터 이용을 선호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D사의 홈페이지나 콜센터는 가입자를 모으기에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D사는 소수의 대형 위탁 대리점으로 영업력을 높이고, 나머지 가입자는 온라인 쇼핑몰 수준의 웹사이트를 구축해 유치해야 한다는 컨설팅 결론이 나왔다.
‘다다익선이 선(善)’이란 맹신도 금물이다. 1980년대 초 일본 모터사이클 업체의 공습으로 위기를 맞은 할리데이비슨은 수차례 조사를 통해 적합 고객의 요구가 독특한 디자인의 차체, 고속도로 질주가 가능한 엔진, 독특한 엔진 배기음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할리데이비슨은 이 3가지 핵심 요소에 개발 역량을 집중하고, 비핵심 부품은 저렴한 일본제를 활용했다. 또 제품 포트폴리오 가운데 경쟁력이 낮은 레이서 및 소형 모델을 퇴출시키고, 크루즈 타입의 제품만 더욱 확장했다. 불황기에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느냐’를 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안상훈 마케팅 인텔라이트 대표 shahn@m-intellight.com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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