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낭소리’의 몇 장면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영화였는데 뜻밖에도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워낭소리’가 뚫렸다고 한다. 영화파일이 불법유통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단속을 해도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불법다운로드를 막기는 힘들다. 이미 유포된 파일이 P2P 방식으로 개인 간에 전달되는 것을 잡기란 마치 터진 둑에 모래 붓기와 같다. 제작자는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려던 길이 막혔다고 울먹였다고 한다.
복제할 때마다 원본이 훼손되는 아날로그물과 달리 디지털물은 원본 훼손 없이 동시에 다량으로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파일의 불법유통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영화파일을 보유한다는 것은 영화상영관을 갖는 것과 같은 셈이다. 일부는 저예산 독립영화로 200만 명을 돌파하였으니 그 정도면 됐다며 고소를 제기한 제작자를 성토하기도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면 절도에 해당하고, 남의 집에 허락 없이 들어가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재산’인 지적창작물을 허락 없이 가져다 쓰는 것에 대한 죄의식은 여전히 크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마치 거미줄을 쳐 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만 기다리는 일부 저작권단체와 변호사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 청소년저작권 단속으로 수많은 어린 전과자가 양산되었지만, 대부분 재수 없이 걸렸다는 생각만 할 뿐, 저작권을 왜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을 갖게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주변엔 아직도 월 100만 원의 수입도 올리지 못하는 창작자들이 많이 있다. ‘워낭소리’는 성공했지만 자기가 만든 영화에 1만 명만 와서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장 감독은 수없이 많다. 어렵게 성공한 ‘워낭소리’를 축하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제2, 3의 워낭소리가 나오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서태지, 박진영, 워낭소리가 나온 이면에 지금도 까만 밤을 하얗게 새우고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창작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수많은 창작자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개강 때가 되면 교내 복사점은 늘 학생들로 장사진을 치게 된다. 교수들이 자체 편집 제작하여 만든 책(복사본)을 사거나, 한 권의 책을 사서 서로 간에 복사하는 사례도 여전히 눈에 띈다. 그런가 하면 좋아하는 음반을 두 개씩 사서 하나는 뜯지 않는다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으로 점심 한 끼 대접하는 마음에서란다. 몇천 원 하는 책값이나 영화관람비에는 인색하면서도 4000∼5000원 하는 커피점은 늘 붐비는 이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내일을 건강하게 만드는 태도가 어느 쪽인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소가 쟁기질한 흙은 어머니 품처럼 보드랍다. 파헤쳐진 흙 속에 뿌려진 씨앗은 어김없이 싹을 틔울 것이고 뜨거운 여름을 지나 소담스러운 열매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런데 아무나 들어와서 서리를 한다면 누가 땀 흘려 씨를 뿌리고 김을 매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본디 그런 뜻이 아니라지만 장자(莊子)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하루살이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남형두 연세대 법과대학 교수 지적재산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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