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분간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둘 것이라고 했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동북아평화번영공동체 방안을 현실화하기 위한 연구와 책 출간에 몰두하겠다고 한다. 요컨대 “50년, 100년 후 미래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진심일 것이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특별히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닐 터이다.
그러나 그가 언제까지나 현실정치와 담을 쌓고 지낼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본인이 그러려고 해도 주위에서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친이 세력은 좌장으로서 중심 역할을 해달라고 채근할 게 뻔하다. 본인도 뭔가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다.
문제는 친박근혜 세력의 견제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잡히면 정치적 포화를 날릴 것이다. 어떤 이는 “친박 세력이 일부러 덫을 놓을 수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에 대한 친박 세력의 응어리는 크고 깊다. 2007년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자신들이 진 것은 순전히 그 때문이라고 여긴다. 앞으로도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본다.
이 전 의원의 1차적 희망은 물어보나마나 원내 진입일 것이다. 정치를 하려면 그 길밖에 없다. 그러나 친박 세력의 ‘정치적 사면’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화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말로는 턱도 없다. 그로서는 쥐 죽은 듯 조용히 있는 것 외에는 달리 수단이 없다. 사실 그 열쇠는 이명박 대통령이 쥐고 있다. 화해의 상당 부분은 대통령 본인의 몫이기도 하다. 잘못 풀면 한나라당이 쑥대밭으로 변할 수도 있다. 결국 이 대통령의 손에 이 전 의원의 운명도, 한나라당의 운명도 달린 셈이다.
한나라당은 아직도 경선 후유증을 앓고 있다. 친이-친박 세력의 갈등과 알력도 그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그의 귀국에 관심을 갖는 것은 경선 후유증이 그만의 문제도, 한나라당만의 문제도 아닌 한국 정치의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적 외톨이’가 된 것도 대선후보 경선 후유증 탓이 크다. 비주류 대선후보로 선출되면서 싹트기 시작한 주류 세력과의 갈등이 결국 새천년민주당의 분당을 초래했고, 그것은 곧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정통 호남세력과의 결별로 이어졌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도, 정치적 동지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DJ의 관계가 틀어진 결정적 계기도 따지고 보면 경선 후유증 때문 아닌가.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했더라도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지금 풀어본 전례가 없는 숙제를 안고 있다.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경선 후유증을 치유함으로써 정치사의 새로운 전범(典範)을 마련하느냐, 아니면 또 다른 실패를 추가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전 의원이 귀국 후 진정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 해답 속에 그가 살길이 있을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