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희균]‘대치동 不敗신화’ 깨려면 현장 먼저 챙겨라

  • 입력 2009년 3월 21일 05시 34분


11일 낮 12시. 권명광 홍익대 총장은 교육과학기술부 담당 기자들과 만나 미술대 실기고사를 폐지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2시간 뒤 홍대 앞에 밀집한 입시미술학원 강사들 사이에서는 ‘홍대 미대 실기 2013학년도 전면 폐지’라는 문자메시지가 일제히 돌았다. 인터넷 뉴스에도 보도되기 전이었다.

같은 시간 일선 학교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건 전화를 받은 고교 미술 교사들은 “금시초문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순진(?)했다.

입시 정책이 바뀔 때마다 사교육 시장이 얼마나 발 빠르게 대처하는지를 보면 그들의 정보력에 기가 질리게 된다.

최근 정부가 입학사정관제에 속도를 내자 학원들은 더 빠른 속도로 맞춤형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몇 년 전 정부가 사교육 대책으로 논술을 들고 나왔을 때도 그랬다.

자기소개서 첨삭을 잘한다는 경기 성남시의 한 학원은 ‘어수룩한 것처럼, 정말 몰라서 틀린 것처럼’ 쓰는 기술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서울의 한 컨설팅학원은 수십만 원의 소개료를 받고 면접관의 눈길을 확 끌 만한 아르바이트나 봉사기관을 알선해준다.

정부는 사교육을 줄이려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다는데 현장의 반응은 이처럼 딴판이다.

학부모들은 당장 입학사정관 전형에 필요한 학원을 알아보러 나선다. 물론 원래 보내던 내신과 수능 대비 학원을 끊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교과부 장차관은 “입학사정관제가 사교육 시장을 무너뜨릴 것”이라며 지방 학교를 돌고 있다. 공교육 현장을 가는 것은 필요하고 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장차관이 가는 곳은 ‘관(官)이 선별한 잘하는 학교’들이다.

교과부 장차관에게 묻고 싶다. 취임 후 한 번이라도 사교육 현장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지. 오전 2시에 학원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며 진을 치고 있는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한 입시학원 사장은 “사교육을 줄이려면 ‘최악의 입시 정책이라도 안 고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일갈했다. 물론 동의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입시 정책을 내놓아도 그에 맞는 사교육이 생겨나는 상황에서는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말 ‘대치동 불패(不敗) 신화’를 깰 의지가 있다면 최소한 정부가 만든 정책이 사교육 현장에서 어떤 괴물로 바뀌는지 직접 봐야 한다. 그래야 해답도 얻을 수 있다.

김희균 교육생활부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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