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경영 부실로 미 정부로부터 1700억 달러(약 240조 원)를 지원받은 AIG의 ‘보너스 잔치’는 가히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극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돈 몇 푼이 아니라 나라의 근본적 가치에 관한 문제”라며 분노했다.
AIG 파문은 그저 ‘태평양 건너 구경거리’일 뿐인가. 아니다. 우리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올 1월까지 168조5000억 원의 공적(公的)자금, 즉 국민 세금을 부실 금융기관 및 기업 등에 투입했다. 이 돈은 외환위기 극복, 금융 및 기업경쟁력 강화, 경기 부양 등의 ‘종잣돈’이 됐지만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나돌 만큼 투입과 운용의 적합성, 적정성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공적자금 비리(非理)에 대한 총체적 진실 규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두 차례 7조9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던 우리은행이 사실상 공적자금인 은행자본확충펀드에서 2조 원을 지원받겠다고 신청하는 등 국내 은행들은 작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시 정부에 손을 내밀고 있다. 이런 판에 작년 12월 정부로부터 대외채무 지급보증을 받았던 신한금융그룹과 외환은행이 최근 경영진에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AIG에 비해서는 약과이고, 불법도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여기에도 모럴해저드가 있다고 우리는 본다. 하기야 정치권, 정부, 공공기관 할 것 없이 갖가지 모럴해저드에 빠져 있으니 은행들의 스톡옵션 정도를 문제 삼을 위정자나 당국자가 있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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