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홍범]한은법 개정, 정치논리 경계를

  • 입력 2009년 3월 28일 02시 59분


한은법 개정이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금융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개정의 취지다. 국회에 발의된 한은법 개정안만 해도 이미 10개에 이른다. 이번에 한은법을 개정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접근인지 개정 내용을 검토해보자.

금융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거대한 장치를 공적 금융안전망이라 부른다. 여기에 참여하는 공공기관에는 한국은행 말고도 금융감독당국(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그리고 정부(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가 포함된다. 감독당국은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을 통해, 예금보험공사는 예금보험을 통해 각각 금융안정을 지향한다. 정부는 금융안정을 최종적으로 책임진다.

왜 이렇게 여러 공공기관이 금융안정에 관여하는 것일까. 이는 금융기관, 시장, 인프라 등 금융의 미시적 측면과 신용량, 통화량, 이자율 등 거시적 측면의 유기적 상호작용으로 얻어지는 결과물이 바로 금융안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안정은 각 공공기관이 자신의 고유 책무와 권한을 이행하는 가운데 다른 공공기관과의 정보 협력과 기능 조정을 거쳐 비로소 달성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금융안전망 참여기관 사이의 협력과 조정이 매우 취약했다. 공공기관끼리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세간의 잦은 지적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렇다면 이번 위기를 맞아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들 기관의 책무 권한 수단 등을 전체적으로 재점검하고 기관 간 협력과 견제가 원활할 수 있도록 현행 금융안전망의 구조 전반을 재설계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다. 이렇게 볼 때 한은법 개정으로는 금융안전망의 부분적 개선만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고, 책무 권한 수단의 측면에서 다른 공공기관과의 조화나 협력 견제를 구체적으로 고려하기도 곤란하다. 이것이 한은법 개정의 근본 한계이다.

한은법 개정의 내용을 살펴보자. 발의된 개정안은 대체로 목적조항에 금융안정 책무를 명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권한을 부여하되, 한은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적절한 내용 구조이다. 책무에는 으레 적절한 권한이 필요하며, 책무 권한의 확대에는 지배구조의 보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책무-권한-지배구조는 이번 개정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삼위일체이다.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미시건전성 감독) 외에, 경기변동을 감안한 금융시스템 전반의 건전성 감독(거시건전성 감독)이 금융안정에 필요하다는 인식이 최근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다. 거시경제 안정을 추구하는 중앙은행은 거시건전성 감독의 주체로서 널리 인정된다. 이에 따라 거시건전성 정보를 다루는 중앙은행과 미시건전성 정보를 다루는 감독당국 사이의 정보 협력의 중요성은 과거보다 더욱 커졌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행의 제한적 검사권 등 정보수집권 확보는 이번 개정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자원절약적 정보공유 방식을 반드시 제도화해야 한다. 예컨대 두 기관이 금융기관 공동검사나 교차검사를 정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은의 유동성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개정안에 포함된다고 한다. 이는 한은의 최종 대부자 기능을 강화하는 것으로 일단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한은이 유동성 지원을 쉽게 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면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한은의 독립성이 치명적으로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회가 금융안전망의 재설계라는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 유독 한은법만을 고치려는 진의가 혹시 따로 있는가 하는 의문과 맞물려 우려가 증폭되는 대목이다. 정치적 압력에 따른 긴급 유동성 지원이라면 그것은 금융안정이 아니라 금융파국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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