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는 지난해 1학기 영어수업 시간에 A B C도 읽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은 영어 시간만 되면 자기 모둠에서 간단한 인사말과 대화를 거뜬히 해냈지만 윤수는 입도 떼지 못했다. 자연히 옆 친구에게 장난만 걸었고, 점점 수업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돼갔다. 영어가 싫은 것은 물론이고. 3월 서울지역 초등학교 4∼6학년 학생이 치른 교과학습 진단평가 때는 영어 과목에서 ‘미도달’ 판정을 받았다. 4학년이지만 3학년 내용을 전혀 몰랐다는 얘기다.
요즘 윤수는 달라졌다. 선생님이 “How many are there?(몇 개가 있니?)”라고 물으면 손을 번쩍 들고 “Nine(9개)”이라고 대답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진단평가 이후 윤수에겐 2학기 때부터 담임교사와 4학년 교사 3명, 대학생 보조교사 2명 등 모두 6명의 ‘3각 편대’가 투입됐다. 4학년 수업시간이지만 담임교사는 윤수에게만 20여 분 정도 3학년 내용을 가르쳤다. 방과후학교 ‘소망반’에서는 4학년 교사들이 윤수 같은 미도달 학생들에게 영어, 국어, 수학 과목을 가르쳤다. 교사들이 모두 4학년 담임이어서 윤수에게 3, 4학년 내용을 동시에 가르칠 수 있었다. 윤수가 학교생활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대학생 보조교사들은 놀이와 상담을 병행했다.
예 교장은 “윤수가 3학년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4학년 내용까지 쉽고 빠르게 익히는 ‘전이효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소망반에서 윤수에게 영어를 가르친 박소영 교사는 “미도달 학생 모두가 좋은 결과를 보인 것은 아니지만 진단평가를 통해 부진을 밝혀내고 그것이 누적되지 않도록 기회를 준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지난해 진단평가에서 미도달 판정을 받은 서울시내 초등학생은 모두 2만7689명. 서울시교육청은 연천초교와 비슷한 노력을 펼쳐 2만2167명(80.1%)을 부진에서 구제했다. 윤수처럼 ‘전이효과’까지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4학년 학생이 3학년 때 배워야 할 것을 못 배우고 그냥 넘어가지는 않은 것이다. 이틀 뒤면 ‘2009년 교과학습 진단평가’가 치러진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진단평가를 “파탄내겠다”고 선언했다. 윤수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파탄 선언’을 어떻게 생각할까? 차마 그건 물어보지 못했다.
김기용 교육생활부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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