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겐 유산 한 푼 안준 아버지
‘그랜 토리노’를 보면서 줄곧 “도대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배우는 어떻게 저렇게 나이가 들수록 ‘영화의 전설’이 되어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1955년 데뷔한 그는 ‘황야의 무법자’(1964년) ‘더티 해리’(1971년) 같은 영화에 출연할 때만 해도 ‘B급 배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1992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년), ‘미스틱 리버’(2003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년) 같은 걸작들을 감독 또는 주연하면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영화 속에서 6·25전쟁에 참여한 퇴역군인으로 50년간 포드사에서 일한 고집불통이자 보수 인종차별주의자로 등장한다. 그에게는 1972년형 포드 ‘그랜 토리노’를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는 흡사 일제강점기와 6·25, ‘10월 유신’과 군부독재를 통과하면서 만주와 베트남 중동에서 피땀 흘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으나 시대와 후손으로부터 외면당하는 한국 노인과 장년 세대를 연상시킨다. 또 혼자된 아버지의 안부보다는 그가 갖고 있는 집과 차에만 눈독을 들이는 ‘싸가지 없는’ 자식들은 오늘날 한국의 노년세대 상당수가 자녀들에 대해 느끼고 있는 좌절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완고한 노인은 소수민족 출신의 16세 소년을 돕기 시작하면서 닫혔던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소년을 ‘남자’로 만들어 간다. 그는 사내아이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소년을 망치려드는 갱단에 맞서, 그는 기꺼이 갱들의 소굴을 찾아 나선다. 사지(死地)로 떠나면서 그는 무시해 왔던 젊은 신부를 찾아가 “성탄 파티에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키스를 했고, 두 아들과 가까워지는 법을 몰랐다”고 고해하며 용서를 빈다. 하지만 그는 유언장에서 자식들이 그처럼 탐내던 집을 교회에, ‘그랜 토리노’는 자신을 진심으로 따랐던 소년에게 주도록 한다. 이 라스트 신이 왜 그렇게 통쾌했을까.
사랑 찾아나선 퀴즈쇼의 순정남
인도 빈민가를 무대로 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운명의 긍정적 힘’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사어(死語)’가 되다시피 한 ‘순정(純情)’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한다. 빈민가 출신으로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18세 청년 자말이 변호사 교수 의사 등 지식인들도 초반에 나가떨어지는 인기 퀴즈쇼에서 2000만 루피(약 5억5000만 원)의 최고 상금을 획득하는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출제된 문제는 하나같이 자말이 험난한 인생사에서 목도한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자말이 퀴즈쇼에 출연한 것은 결코 ‘백만장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자말이 라티카에게 같이 떠나자고 하자 그녀는 “뭘 먹고 살게?”라고 묻는다. 자말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사랑”이라고 답한다. 어떻게 이 ‘순정남’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니 보일 감독은 ‘스타’와 ‘섹스’ 없이 ‘해피 엔딩’만으로도 얼마든지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동시에 극찬을 받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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