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군 “양식셰프 꼭 될래요”
박 주방장 “열정이 가장 중요해”
지난달 30일 서울역에서 만난 대구 관광고 3년 최종욱 군은 ‘시크릿’이란 책을 들고 있었다. 이날 오전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면서 역내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다. 책이 말하는 비밀은 간단했다. 긍정적인 생각과 간절한 믿음이 만날 때 내면에 숨겨진 강력한 힘이 나온다는 것. 종욱 군은 “내가 품고 있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라 읽으면서 힘이 났다”고 했다.
종욱 군은 이날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총주방장 박효남 상무(48)를 만나기 위해 대구에서 올라왔다.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학교를 하루 쉰 것이다. 얼마 전 동아일보에 편지를 보낼 때만 해도 박 상무를 만나는 일은 그저 바람이었다. 종욱 군은 “정말 만나고 싶었고 그렇게 될 거라 믿었다”고 전했다.
오후 1시 서울 남산에 있는 힐튼호텔 로비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이날을 위해 검은 정장을 빼입고 온 종욱 군의 뺨이 수줍은 듯 빨개졌다. 기다란 주방 모자에 흰색 조리복을 갖춰 입은 박 상무는 “먼 길 와줬구나”라며 종욱 군의 어깨를 두드렸다.
최 군 “정말 만나뵙고 싶었는데…”
박 주방장 “어려운 길 와줬구나”
“방학때 한달이라도 배울수 있나요”
“물론이지, 언제든 대환영이야…힘들었던 경험도 재산이 된단다”
박 상무는 종욱 군을 위해 준비해온 주방 모자와 유니폼을 내줬다. 종욱 군이 유니폼 단추를 채우는 동안 박 상무는 모자 크기를 손수 맞춰 씌워줬다. “요리사의 귀가 머리에 가리면 손님들이 음식에 신뢰를 갖지 못한다”며 종욱 군의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다. 종욱 군은 유니폼 왼쪽 가슴에 박힌 힐튼호텔의 ‘H’ 로고를 만지작거렸다.
박 상무는 종욱 군에게 호텔 주방 곳곳을 안내했다. 각종 고기가 부위별로 냉동실에 진열된 부처숍(butcher shop), 톱밥을 태워 연기를 내는 훈제실, 조리한 음식을 모아 영하의 온도로 빨리 식히는 냉방실 등 주방은 4개 층에 걸쳐 12개의 방이 미로처럼 연결된 거대한 ‘요리 공장’이었다. 이곳에 근무하는 요리사만 150여 명이다.
종욱 군은 신기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저도 양식 셰프가 되고 싶은데요”라고 나직이 말했다. 그러자 박 상무가 화답했다.
“지금 많이 힘들겠지만 그게 다 재산이야. 나도 어렸을 때 연탄을 40kg씩 나르면서 힘이 장사가 됐고 그때 생긴 체력이 지금 요리사 생활을 하는 데 큰 힘이 됐지. 학력, 자격증 다 필요 없어. 우린 사람을 뽑을 때 마음가짐을 본단다. 죽기 살기로 해보겠다는 그 마음. 알겠어?”
순간, 종욱 군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곤 “선생님, 방학 때 한 달만이라도 주방에서 일해 볼 수 있을까요”라며 조심스레 물었다. 박 상무는 흔쾌히 허락했다.
오후 3시 반경 종욱 군은 호텔을 나서며 청계천에 가고 싶다고 했다. 종욱 군에게는 이날이 난생 처음 서울 나들이다. 청계천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종욱이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7월에 이 근처에서 고시원 방 하나 구하려면 얼마나 들어요?”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