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경서]독립魂들 있었기에 오늘 있는데…

  • 입력 2009년 4월 2일 02시 58분


나는 3월 23일부터 29일까지 동아일보사와 보훈처가 후원하고 이화학술원과 동아일보의 화정평화재단이 마련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는 뜻 깊은 기회를 가졌다. 독립유공자 후손과 함께 중국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다녀왔다. 둘째 날 상하이에서 항저우까지 가는 버스여행에서 들녘에 펼쳐진 봄기운을 만끽하는 나른함 속에서 나는 문득 나라 없는 사람의 서러움을 생각했다.

‘티베트 임정’을 떠올린 까닭은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는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미국 소련과 같은 서양 강대국에 의해 100년에서 400년까지 긴 식민통치를 받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이웃 아시아인이 우리보다 더 끈질기고 참을성이 많아 보였다. 1772년부터 세 번에 걸쳐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당한 후 2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나라 없이 살았던 3800만 명의 폴란드 사람의 고통도 떠올랐다. 그래서 쇼팽은 파리에서 작곡생활을 했고 퀴리 부인도 많은 활동을 타국에서 나라 없이 하지 않았던가.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립을 되찾은 그들의 환희를 떠올려 보았다.

제네바에 근무했을 때 나는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임시정부에 인도적 원조를 해주면서 학교 부엌 공회당을 지어줬다. 1995년 11월 어느 날 뉴델리에서 7시간에 걸쳐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 도중에 버스 타이어가 두 번이나 고장 나는 바람에 고칠 때까지 기다리며 추위에 떨었던 기억이 창밖을 후려치는 봄비 소리와 맞물려 일어났다. 공회당 제막식에서 좋아하던 청소년의 환한 얼굴이 항저우의 들녘과 포개졌다. 그런 회상이 일어난 이유는 상하이 항저우 자싱에서 느낀 임정 요인의 강렬한 발자취 때문이리라. 나는 숙연해졌고 심한 죄책감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우리 임정 요인에게 자금과 피난처를 제공했던 중국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같은 사람들이 왜 오늘날에는 미얀마의 군부독재정권을 묵인 방조할까? 중국의 두 얼굴은 무엇인가?

나에게 임정 90년의 역사는 책 속에만 남아 있었다. 나라 없는 서러움, 현상금이 붙어 있는 삼엄한 경계 속에서의 피신, 그리고 어부를 가장하고 중국 여인과 부부로 둔갑해 피신하고 다녔을 김구 선생의 모습이 그려졌다. 분명 그것은 삶의 처절한 실존이었으리라. 지금까지는 이런 역사적 사건이 남의 일처럼 보였는데 그만큼 나는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행 중에는 윤봉길 의사의 손녀를 비롯해 독립유공자의 손자손녀 그리고 증손자까지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많이 친해졌다. 자연히 오늘날 그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운 삶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유럽의 경우처럼 정부와 국민이 이 후손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길까? 국가는 어떤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그들이 긍지를 느끼도록 하는가? 우리 국민은 어느 정도 이들에게 감사하면서 그들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고 머리를 숙이는가?

독립유공자와 후손 배려 아쉬워

현실은 전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우리는 이들 후손에게 부담을 알게 모르게 주고 심지어 ‘왕따’시키는 것 같다. 서글픈 얘기다. 이제 독립유공자와 후손을 배려하고 돌보는 성숙한 시민으로 거듭나야겠다. 독립유공자를 기리고 후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하고 추진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90년 전 우리처럼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고난 속에서 투쟁하는 미국 워싱턴의 미얀마 망명정부, 자치권을 주장하는 여러 아시아 소수민족의 고뇌에 찬 존엄성에 우리의 연대와 축복을 함께 드리는 작업도 해야겠다.

박경서 이화여대 학술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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