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정일]나를 돌아보는 ‘우리땅 걷기’

  • 입력 2009년 4월 7일 02시 54분


지난겨울, 속리산 자락을 도보 답사하기 위해 충북 보은을 찾았다. 장안면의 비룡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장내리로 가는 길이었다. 호젓한 농로를 따라 걷다가 논두렁길을 지나고, 꽁꽁 언 삼가천을 건너기도 했다. 황해동 마을에 접어들자 정겨운 돌담 고샅길이 눈길을 끌었다. 몇 발자국 걸었을까? 어느 집인가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곶감이 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주인아주머니가 문을 나서고 있었다. 문득 곶감이 먹고 싶었다. “아주머니, 그 곶감 살 수 없어요?” 아주머니는 팔 수 없다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럼 맛이라도 좀 볼 수 없습니까?” 내가 넉살좋게 다시 묻자 아주머니는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여남은 개를 갖고 나왔다. 아직도 남아 있는 시골 인심, 고향 인심이다.

불과 십 몇 년 전만 해도, 한 달여씩 길을 걸어 다니면 ‘미친 사람’이란 소리를 곧잘 들었다. “도대체 돈 생기는 일도 아닌데 왜 걷는가?”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스스로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걷는다. 시민단체나 지방자치단체는 너도나도 걷기코스를 만드는 데 한창이다.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을 따라 걷는 길을 개발한다.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등 조선시대 옛길 복원도 추진된다.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은 이미 일부가 열려 발길이 붐빈다.

우리 땅엔 걷고 싶은 길이 널려있다. 마음만 먹으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을 수 있다. 가령 소백산 둘레길과 변산 둘레길은 어떨까? 북한산 둘레길, 팔공산 둘레길, 금정산 둘레길, 무등산 둘레길, 계룡산 둘레길 등 자원은 부지기수이다. 우린 너무 바쁘게 살았다. 속도를 조금 줄이자. 세계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우리 땅을 천천히 걸으며 나를 돌아보는 데 더없이 좋은 때다.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 선생의 말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걷는 것은 청복(淸福)” 즉 ‘맑은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 니체의 말이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우리 땅, 우리 숨결, 우리 모두 두 발로 걷자.

신정일 문화사학자·사단법인 우리땅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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