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석동빈]성장과 노화

  • 입력 2009년 4월 8일 02시 58분


자동차업계의 거인이 노쇠해 쓰러지려 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7일 “GM이 파산 보호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실적이 괜찮은 브랜드는 분리시켜 ‘굿(Good) GM’으로 새로 출범시키고 불량 부문은 파산 처리하는 시나리오로 가닥이 잡혔다고 한다. 어떤 형식이든 이제 GM은 과거의 모습을 되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1908년 설립된 뒤 줄곧 성장가도를 달려오며 세계 1위 자동차회사의 지위에 오른 GM이 101년 만에 최대의 좌절을 맞게 된 것이다. 사실 자동차 역사는 자동차회사가 명멸하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30여 년간은 자동차산업의 태동기로 수백 개의 회사가 태어났다. 그러나 대부분은 역사 속으로 퇴장했거나 다른 회사에 합병돼 창업 당시의 모습을 잃었다.

특히 1930년대 이후 등장한 도요타, 폴크스바겐, 현대자동차, 혼다 등 후발주자들이 약진하면서 원조(元祖)격인 GM, 포드, 푸조, 피아트 등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왜일까. 그들은 ‘성장판’이 닫히고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100년이 넘은 회사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 등은 여전히 세력을 확장하며 성장하고 있다. 조직을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유전자(DNA)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아우디의 성공이 눈에 띈다. 1901년 호르히 자동차에서 비롯된 아우디는 지난해 주요 자동차회사들의 실적이 모두 감소한 가운데 홀로 4.1% 성장을 이루며 처음으로 100만 대 판매를 돌파했다. 슈투트가르터차이퉁과 디벨트 등 독일 언론들은 “아우디가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절묘한 신차 출시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아우디는 1980년대까지는 눈에 띄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그러나 ‘기술을 통한 진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알루미늄 차체와 4륜 구동 등 기술적인 아이콘, 디자인 혁신, 과감한 마케팅 등으로 과거에는 비교 대상도 되지 않았던 벤츠의 턱 밑까지 쫓아갔다. 시간이 지나도 늙기는커녕 조직이 더욱 젊어지며 성장을 이룬 것이다.

반면 1980년 당시 아우디보다 20배 이상 규모가 컸던 GM은 8억 달러에 이르는 적자를 내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30여 곳의 공장을 폐쇄하고 20만 명의 근로자를 해고하면서 1989년 42억 달러의 흑자를 달성해 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사실은 더 큰 몰락의 시작이었다. 기계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연구개발과 생산시스템이 느슨해져 자동차의 품질은 떨어졌고 노사관계는 잠재적인 폭탄이 됐다. 성장판을 갉아먹은 셈이다. 영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재규어, 로터스, 롤스로이스 등 유명한 자동차회사가 많았지만 지금은 모두 외국에 팔려버렸다.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점차 늙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영국 스스로의 평가다.

경제위기는 비효율적이고 늙은 조직들이 도태되고 새로운 판을 짜는 계기이기도 하다. 외형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덩치를 불려온 글로벌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회춘’ 처방이 한창이다. 그래서 위기가 끝나면 고효율 시스템으로 무장한 기업들만 살아남아 이전보다 더욱 치열한 전쟁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원화 약세라는 반짝 호재에 한숨을 돌리고 있는 국내 수출기업들이 더욱 긴장해야 할 이유다. 성장과 노화는 삶과 죽음으로 운명을 갈라놓지만 아쉽게도 성장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 각자의 몫이다.

석동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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