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지명훈]충무공 정신을 판다니…유물-고택 관리대책 시급

  • 입력 2009년 4월 8일 02시 58분


28일 충남 아산시에서 제48회 아산성웅 이순신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충무공 종손들은 요즘 축제보다 소송 준비로 부산하다. 충무공 15대 종부인 최모 씨가 난중일기를 비롯한 충무공 유물을 암시장에 매물로 내놨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본보 4일자 A11면 참조

최 씨는 같이 사업을 해온 한모 씨에게 유물 처분 위임장도 써준 것으로 알려졌다.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회 이재왕 회장은 “유물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과 최 씨 소유의 유물을 찾아달라는 진정서를 법원과 검찰에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 씨가 빚을 지는 바람에 충무공이 소년 시절부터 무과 급제 때까지 살고 무예를 연마했던 고택과 산자락은 이미 경매 매물로 나왔다. 종손들은 이를 경매에서 낙찰받기 위해 최근 1억 원을 모금했다. 하지만 금액이 부족해 15일경 국민 후원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이런 상황은 충무공 묘 제사 비용 마련을 위한 논밭이 종손의 부채로 경매 위기에 처했던 1931년 일제강점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동아일보의 보도로 성금 1만6000여 원(2만여 명 참여)이 모아져 종손의 빚을 갚으면서 경매 위기를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매년 수십억 원을 들여 전국에서 충무공 축제를 연다. 아산성웅 이순신축제, 통영한산대첩 축제, 여수거북선대축제…. 하지만 최근 사태는 충무공의 정신을 교훈으로 삼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난중일기를 처음 완역한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노승석 대우교수는 “난중일기에는 미리 준비한다는 뜻의 ‘비(備)’자가 유난히 많고 충무공 해전의 승인(勝因)도 사전 대비 덕분”이라며 “이런 사태를 막지 못한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 당국은 1967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 당시 현충사 사적지를 전부 국유화하지 못했고 2006년에는 종손의 매입 건의가 있었으나 적극 나서지 않았다.

유물 관리도 문제다. 최 씨가 보관 중인 82점의 비지정 문화재는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다가 최근 문제가 불거지자 조사를 벌이겠다는 방침이다.

노 교수는 “충무공 유물을 돈거래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물질에 초연했던 충무공의 정신과 거리가 멀다”며 최근 번역한 충무공의 한시를 소개했다.

‘빈궁과 영달은 오직 저 하늘에 달렸으니/모든 일은 모름지기 자연에 맡기리라/부귀함은 때가 있으나 홀로 차지하기 어려운 법….’

아산성웅 이순신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올해의 다례제는 추모보다 참회의 시간이 돼야 할 것 같다. ― 아산에서

지명훈 사회부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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