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호열]개성공단 직원억류 더는 안된다

  • 입력 2009년 4월 8일 02시 58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한반도 상황이 무척 어수선하다. 우리 정부는 도발로 규정하면서 단호한 대응을 천명했고 미국과 일본도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대북제재를 둘러싼 공방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개성공단 내 현대아산 직원의 장기 억류사태는 공단의 안정적 운영이나 남북관계의 개선에 적신호가 되고 있다.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남한 직원이 북한체제를 비난하고 여성 근로자의 탈북을 책동했다는 북한 측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조사받는 과정에서 접견과 변호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태는 명백한 남북 간 합의 위반이며 국제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그동안 금강산과 개성공단에서 위법사항이 발생했을 경우 합의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통해 경고, 범칙금 부과 또는 추방의 형태로 문제를 해결했으나 이번에 북측은 우리 측 접견도 허용치 않음으로써 사태가 좀 더 장기화되고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북측의 태도는 대남 강경책의 일환으로 해석될 부분이 있다. 북한은 연초부터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북관계의 전면대결 상태를 선포한 이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남북기본합의서 파기 성명 등 이명박 정부에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3월 9일부터 20일까지 실시한 키 리졸브 한미 연합군사연습 기간에 군사통신을 전면 차단함으로써 개성공단의 출입을 파행적으로 통제했듯이 개성공단 운영의 주도권을 다시 과시해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개성공단의 진척 상황에 대한 북한 나름의 불만이 누적됐고 북측 근로자의 사상적 기강을 재확립하는 계기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남한 직원 억류사태를 활용하려는 것 같다. 현재로선 북한에 억류 중인 2명의 미국 국적 여기자와는 달리 정식 기소를 하거나 인질외교를 펼칠 것으로 보이진 않으나 남북 합의를 벗어나는 극단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3만9000명에 이르는 북측 근로자의 임금으로 획득하는 연간 3000만 달러 이상의 외화를 쉽사리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북이 합의한 교류협력사업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이 북측 요인으로 파행을 장기화할 경우 북한에 대한 대내외 신인도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므로 섣불리 폐쇄 결정을 할 수 없다. 남쪽 입장에서도 대통령이나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의 유지 필요성을 언급한 만큼 남측 직원 억류사태로 개성공단의 장래가 최악의 사태로까지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환경적 요인을 근거로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한 채 사건이 해결되면 또다시 유야무야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 남북 간 합의 사항은 거창한 원론에 비해 각론 부분에서 허술하고 모호한 측면이 많다. 남북 교류나 협력의 외적 성과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간과한 측면과 함께 복잡하고 껄끄러운 부분은 가급적 회피하려는 관성 때문이다.

2004년 채택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의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 제10조 제3항에 “북측은 인원이 조사받는 동안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한다”고 명시했으나 기본적 권리 자체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 숱한 회담과 합의서 채택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인 신변안전에 대한 규정을 남북이 각기 달리 해석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북한 로켓 발사와 국내외 경제사정의 악화로 개성공단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근무 직원의 신변안전마저 보장되지 않는다면 남북 당국의 기대와 달리 우리 기업이 먼저 철수를 서두를 때가 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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