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허승호]공정무역의 두 얼굴

  • 입력 2009년 4월 8일 02시 58분


“피 묻은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겠습니까?”

공정무역을 주창하는 이들은 밸런타인데이(2월 14일)를 앞두고 이렇게 물었다.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는 서아프리카 밀림을 파괴해 만든 농장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그곳에선 28만 명의 빈곤층 아동이 일하고 있다. ‘피 묻은…’이란 구호는 이런 우울한 현실을 고발하면서 ‘공정무역 초콜릿’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공정무역 운동과 정책은 딴판

공정무역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스타벅스는 2007년 자사 매장에서 소비한 커피원두의 65%에 해당하는 10만3000t을 국제가격보다 20∼30% 높은 값에 구매했다. 빈궁한 커피농가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추가적인 원가부담은 커피 한 잔에 20원쯤으로 추정되지만 그럼에도 지원대상이 된 농부의 살림은 훨씬 좋아진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공정무역이 민간 차원의 ‘운동’일 때만 그렇다. 정부가 같은 이름의 ‘정책’을 펼 경우엔 전혀 다른 결과가 빚어진다. 공정무역 정책의 일반적 의미는 ‘노동, 환경, 안전 기준을 어기며 생산한 제품은 수입하지 않겠다’는 것. 1993년 미국의 톰 하킨 상원의원(민주당)이 발의한 미성년노동 금지법이 좋은 예다. 이 법은 당시 방글라데시 아이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켜 만든 옷을 파는 월마트를 겨냥했다.

법이 제정되자 방글라데시 공장들은 깜짝 놀라 아동 고용을 중단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학교에? 학교 갈 형편이었다면 처음부터 공장에 안 왔을 게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이렇게 보고했다. “해고된 아이들은 쓰레기장을 뒤지는 등 더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거나 거리를 방황했다. 특히 매춘을 시작한 소녀가 많았다.” 맙소사!

환경 기준도 비슷하다. 선진국에선 탄소배출을 줄이는 녹색기술에 대한 요구가 높다. 지구온난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마실 물이 부족한 나라도 많다. 안전한 식수가 없어 세계적으로 매년 5000만 명이 이질 등에 걸리고 200만 명은 죽는다. 음용수 환경을 개선하려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공장이라도 돌려서 소득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생산과 교역에서 선진국 기준만 강요하다가는 빈곤국의 삶이 더 궁핍해질 수 있다.”(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공정무역이 고지(高地)에 먼저 오른 자의 ‘사다리 걷어차기’ 수단으로 악용돼서도 안 된다.

게리 로크 신임 미국 상무장관이 최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자유무역보다는 공정무역을 신봉한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로크류(流) 공정무역’은 오지랖이 아주 넓은 것 같다. 노동, 환경 기준뿐 아니라 자동차 교역량의 불균형을 거론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멋진 명분 뒤의 독소 경계해야

공정무역의 출발점은 도덕성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책화하면 공정성은 껍데기만 남을 뿐 의도와 내용은 보호무역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정말 큰일은 자유무역의 맹주이자 세계 최대 교역국인 미국이 “나나 살고 보자”며 보호무역으로 돌아서는 경우다. 그러면 세계경제가 회복은커녕 극도로 침체된다. 글로벌 재앙이다. 미국도 못 살아난다. 로크 씨가 통상을 책임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아니라 산업정책을 맡은 상무장관인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악마는 디테일(세부사항)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멋진 명분쯤은 천사에게 쉬 양보한다. 엉성한 디테일 덕분에 거창한 간판 뒤편에 소복소복 쌓이는 ‘몹쓸 결과’가 본래 악마가 노리는 몫인 까닭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에 맞설 유일한 무기도 디테일이라는 사실. 명분 속에 감춰진 독소를 검출하는 시약(試藥) 역시 디테일일 수밖에 없다. 공정무역 정책에도 그대로 해당되는 우화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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