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여기까지 오기에는 박상천 의원의 역할이 컸다. ‘박상천 법안’이라고 이름 붙여도 하등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박 의원은 지난 연말연시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빚어진 국회 폭력 사태를 겪으면서 대의(代議)민주주의의 정상 가동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그는 5선 원로임에도 불구하고 국회 도서관에서 직접 선진국의 사례를 공부해 안을 만들고 민주당 의원 82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그의 열성과 뚝심이 마침내 당심(黨心)을 움직였다.
우리 의회정치 수준은 그야말로 한심할 지경이다. 건설적인 대화와 타협은 실종됐고,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진행되는 과정은 한결같다. 야당의 죽기살기 식 반대와 여당의 밀어붙이기, 폭력사태 발생, 상호 고소고발과 국회 윤리위 제소, 유야무야로 다시 원위치에 돌아오는 악순환이다.
‘박상천 법안’은 이런 퇴행적 행태를 청산하자는 것이다. 소수당은 무조건 법안 상정을 보장하고, 다수당은 표결에 앞서 재적 5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조정절차와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재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조정절차를 종료하고 표결에 들어가도록 했다.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소수당과 다수결 원칙을 중시하는 다수당의 이해를 절충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조정절차 종료 조건을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박 의원은 당초 미국 상원의 경우처럼 ‘재적 5분의 3 이상’으로 했으나 민주당 논의 과정에서 이렇게 강화됐다. 현재 170석을 가진 한나라당을 의식한 결과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 종료를 헌법 개정이나 대통령 탄핵만큼 어렵게 하면 입법 비용이 너무 커진다. 민주당은 영원히 야당과 소수당만 할 작정인가. ‘박상천 법안’은 대의민주주의를 위해 진일보(進一步)한 제도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합리적인 조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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