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혁범]퇴임 후 존경받는 대통령 되기

  • 입력 2009년 4월 13일 02시 57분


영어에 ‘죽은 말 때리기(flogging a dead horse)’라는 표현이 있다. 이미 결판이 난 상대를 계속해서 비난하고 공격하는 행위를 뜻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금품수수에 대한 비난 여론도 이미 정치적 도덕적으로 파산한 ‘노무현 죽이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여권의 ‘현재진행형’ 비리 감추기에 동원돼서는 안 된다. 물론 퇴임 전이건 후건 한 나라의 대통령이 거액의 돈을 사적으로 요구하고 받은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이참에 그는 사정을 털어놓고 ‘법적인 평가’뿐만 아니라 도덕적 정치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美선 정치와 거리두고 사회 활동

이 기회에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은 대통령의 퇴임 후의 언행이다. ‘퇴임 후 문화’라는 표현은 이미 사회가 민주화됐다는 증거다. 쿠데타 등에 의해 권력을 잃은 대통령에게 ‘퇴임 후 문화’는 존재하기 어렵다. 전두환 씨와 노태우 씨를 제외하면 전직 대통령은 나름대로 품격을 지키며 당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해왔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 지도자가 퇴임 후에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였다. 사석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선문답처럼 드러내면서 ‘김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이점을 활용해서 국내외적으로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널리 알리는 데 집중했다.

그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비교된다. 정치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재선에 실패한 그는 오히려 퇴임 이후에 분쟁지역에서 평화와 민주주의의 매개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자국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존경을 받는다. 자신의 목공 재능을 살려서 서민을 위한 집짓기(habitat)운동에 직접 참여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대통령은 아니었지만 대선 패배 후 자신의 전매품인 환경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환경에 관련된 최고의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도 마찬가지다). 미 대통령이 퇴임 후에는 현실정치에 거리를 두고 자신의 이름을 딴 도서관을 관장하고 자서전을 쓰거나 대중 강연에 나서는 모습은 의례적인 패턴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새로운 ‘퇴임 후 문화’를 만드는 데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귀향해서 나름대로 소박하게 살면서 홈페이지나 직접대면을 통해서 지지자 및 동네 주민과 소통하는 대신 현실정치에 대한 개입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서민적 이미지는 이제 무너져버렸고 감옥에 갇히는 치욕을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도덕 기반 ‘퇴임후 문화’ 조성을

대통령의 권력은 그가 갖는 직책에 의해 생기는 데 퇴임하는 대통령은 자연인인 자신에게 여전히 권력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대통령 취임식 직후에 새 대통령이 전임자를 헬기장에서 배웅하는 의전을 갖춤으로써 권력이행이 이뤄졌음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하는 관행이 있다. ‘퇴임 후 문화’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퇴임 후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현재의 권력에 의해서는 통제, 은폐 가능한 비리에 대한 유혹을 갖게 된다.

물론 관행이 생긴다고 하루아침에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점은 퇴임 후를 항상 생각하며 재임 시에 어떤 형태의 비리에도 대통령이 말려들지 않는 도덕적 자제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고 ‘고소해’하기보다는 현재 자신들은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지 이 기회에 뒤돌아봐야 하고 몇 년 후에 닥칠지 모르는 퇴임 후 상황에 대해 지금부터 단단히 경계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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