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채 동결’ 입안 명령
2금융권-中企신보기금 구상
IMF 담당관 만나 협조 요청
경제난국의 돌파구를 1972년 8·3조치에서 찾으려 한 데에는 당시 재계의 영향이 컸다.
어느 날 김용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채를 동결하지 않고서는 살아날 기업이 없다고 호소했다.
‘한국 경제의 앞날을 위해, 그리고 자주국방력을 배양하기 위해 중화학공업을 키우는 것이 제3차 경제개발계획의 기본 목표인데 기업이 이렇게 힘이 없다면 계획의 성패는 뻔한 일이 아닌가.’
대통령은 이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1972년 초여름의 어느 날 김정렴 비서실장, 김용환 경제특보, 그리고 나를 한자리에 불러놓고 자신의 결심을 토로하고 극비리에 사채동결방안을 입안하라고 명령했다.
나는 주무장관으로서 걱정이 앞섰다. 사채는 문화적 요인과 이자율의 통제에서 유래하는 것이니 사채를 동결하더라도 금리를 자유화하지 않는 한 사채가 다시 생겨날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문화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힌 계와 사채를 한 번쯤은 응징함으로써 타성을 타파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그 방법과 효과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나는 세 가지 정책적 요건을 생각했다.
첫째는 사채에 대한 조치가 자유경제체제의 기본 원칙에 크게 위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는 사채 동결조치 후에 사채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새로운 금융시장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중소기업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문제는 사채를 채권이나 주식으로 전환하도록 해 이자제한법의 취지에 따라 사채업자의 재산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들을 증권시장으로 유도해 사채놀이 대신 주식 투자를 하게 하면 자본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문제는 1970년 초부터 구상해온 제2금융권 개발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문제인 중소기업에 대한 특별 배려에 대해서는 방법을 찾느라고 밤잠을 못 이루고 고민했다. 그러던 중 문득 각 은행에 중소기업신용보증기금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이런 생각을 대강 메모해 그 다음 날 아침 지방 출장을 떠나는 길에 김원기 차관을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로 나오라고 해 메모를 건네주고 법적 조치를 서두르라고 부탁했다.
김용환 경제특보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올림피아호텔에서 관광진흥사업 프로젝트를 가장해 비밀리에 치밀한 사채동결조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었다. 재무부 실무자들은 네 가지 입법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또 한 가지 걱정이 생겨났다. 만약 국제통화기금(IMF)이 이 조치를 문제 삼아 재정안정계획을 완전히 파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 끝에 이용만 이재국장을 대동하고 미국 워싱턴으로 건너가서 장관 체면을 무릅쓰고 IMF의 한국담당관에게 이 비밀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장장 3시간을 설득해 IMF가 이를 양해할 것과 이런 협의 때문에 비밀이 누설되는 일이 없도록 다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브카라는 인도 출신의 담당관은 개발도상국의 사정을 이해하고 우리의 요청을 수락했으며 성공을 빈다고 말해줬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